지난 주말, 아들의 생일을 앞두고 아내와 함께 국립세종수목원을 찾았다. 기분 좋은 나들이길이었지만, 현장에 들어서며 마주한 풍경은 부러움을 넘어 ‘내가 사는 지역에는 왜 이런 곳이 없을까’ 하는 깊은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발길 닿는 곳마다 이어지는 너른 평지와 완만한 길 덕분에, 휠체어를 이용하는 우리 부부가 누구의 손길이나 도움을 빌리지 않고도 나란히 계절의 정취를 온전히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거동이 불편한 부모님을 휠체어에 모시고 온 자녀들, 걸음마를 떼는 아이의 손을 잡은 부모, 유아차를 여유롭게 밀며 담소를 나누는 가족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었다. 진정한 쉼과 휴식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아무런 장벽 없이 누구에게나 평평하게 열린 길 위에서 피어난다는 사실을 다시금 절감했다. 그 안온한 풍경 속에서 자연스레 삶의 터전인 용인을 떠올렸다. 110만 특례시로 몸집을 키운 우리 용인의 현실은 과연 어떠한가. 용인에서 가족과 함께 숨을 고를 만한 너른 ‘평지형 공원’을 찾기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것만큼이나 어렵게 느껴진다. 집 근처 공원들은 아파트 단지 사이에 들어선 소규모 산책용 공원이 대부분이어서, 온 가족이 여유롭게 머물며 여가
얼마 전 지인의 부친상 소식을 문자로 받았다. “아버님이 별세하셨습니다. 빈소는 따로 마련하지 않았습니다. 조문은 마음으로만 받겠습니다” 그게 전부였다. 조문객을 맞으며 사흘 밤을 지새우는 장례는 없었다. 가족과 가까운 친지 몇이 장례식장에서 고인을 모시고, 화장을 마친 뒤 짧게 인사를 나누고 고인을 보내드렸을 것이다. 메시지의 뉘앙스는 담백했는데 읽고 나니 홀가분함과 쓸쓸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우리가 알던 유교식 상례가 이제는 이렇게 조용히 사라지고 있구나 싶었다. 그런데 나중에 사정을 들어 보니 이야기가 조금 달랐다. 빈소가 없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장례지도사가 고인을 정성껏 씻기고 수의를 입혀 관에 모셨다. 염습과 입관에 이어 발인을 챙기고, 화장장을 예약하고, 유골함을 준비하는 일에 가족끼리 올린 짧은 추모식까지 지도사 한 사람이 조용히 맡아 진행했다고 한다. 형식은 줄었어도 고인을 대하는 손길은 허술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얘기를 듣고 물러난 건 형식이지 마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용(中庸)>에 이런 구절이 있다. "돌아가신 분 섬기기를 살아 계신 이 섬기듯 하고, 떠나간 분 섬기기를 곁에 계신 분 섬기듯
2004년 영국 BBC가 조금 이상한 프로그램 하나를 내놓았다. 유명인의 조상을 찾아주는 프로그램이었다. 배우와 정치인, 스포츠 스타 등이 출연해 자신의 조상을 찾아간다. 출생과 혼인 기록을 뒤지고 오래된 신문과 군대 기록을 찾는다. 조상이 살았던 마을과 일터를 찾아가고 때로는 국경을 넘는다. 제목은 《Who Do You Think You Are?》. ‘당신의 조상은 누구입니까?’가 아니다. ‘당신은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처음에는 유명인의 가족사를 들여다보는 프로그램 정도로 보였을지 모른다. 그런데 반응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첫 시즌부터 큰 관심을 끌었다. 당시 BBC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영국 국민의 29%가 이 프로그램을 한 번 이상 시청했다. 국민 거의 3명 가운데 1명이 남의 조상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본 셈이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단순히 많은 사람이 텔레비전을 봤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프로그램이 사람들의 실제 행동을 바꾸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첫 시리즈가 방송된 뒤 영국 성인의 7%가 자신의 가족사를 직접 조사하기 시작했다는 조사도 나왔다.남의 조상을 보다가 자기 조상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2004년 시작한 《Who Do You Think Yo
충남 홍성의 홍주향교는 성현을 모시고 지역의 인재를 길러온 유교문화의 터전이다. 향교는 공자와 선현에게 제사를 올리는 공간이자, 유생들이 학문을 익히고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배우던 교육기관이었다. 지역민에게는 예절과 공동체의 질서를 함께 나누는 장소이기도 했다. 홍주향교를 이야기할 때 잊지 말아야 할 이들이 있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 당시 향교와 문묘를 지키려다 목숨을 잃은 일곱 유생, 칠의사(七義士)다. 오경근·최민지·방세응·방석규·이준복·서종득·최학신이 그들이다. 이들은 향교에서 공부하던 재생(齋生)이었다. 재생은 향교에 머물며 학문을 닦던 유생을 뜻한다. 이들에게 향교는 공부하는 건물을 넘어 성현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는 삶의 터전이었다. 1894년은 조선 사회가 격변하던 때였다. 탐관오리의 수탈과 외세의 침략에 맞선 동학농민운동이 확산하면서 홍주 지역도 충돌을 피하지 못했다. 칠의사의 희생 역시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살펴야 한다. 향교에 전하는 칠의사의 이야기는 성현을 모신 문묘를 지키겠다는 결의에서 출발한다. 이들은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향교를 떠나지 않았고, 끝내 목숨을 잃었다. 후대 유림은 그 선택을 의로운 도리를 지키다 순절한
지난 1965년 10월 18일 서울시 광진구 용당산 호텔에서 ‘한국 제(諸) 종교의 공동 과제’를 주제로 열린 우리나라 6대 종교인 최초의 대화모임은 이후에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창립으로 이어지며 국내 종교 간 대화 운동의 초기 사례로 평가받는다. 이 자리에서는 동양 종교(불교, 유교, 천도교, 원불교)는 하루속히 자체 개혁을 통한 현대화를 해야 하고, 서양에서 온 종교(개신교, 천주교)는 하루속히 토착화가 필요함이 강조되었다. 이후 ‘현대화’와 ‘토착화’는 각 종교의 최대 화두가 되었고, 유교 역시 변화하는 시대 흐름에 발맞추기 위해 ‘유림 조직의 대중화’, ‘유교 이론의 현대화’, ‘선비정신의 행동화’를 슬로건으로 자체 개혁에 박차를 가하며 1990년대에 ‘장정’(지금의 ‘종헌’)을 제정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체계적인 종단 체제를 만들어 나갔다. 종교단체에서 종단은 같은 신앙과 교리를 공유하는 개별 사원들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어주는 중앙의 핵심조직이자 최고 의결기관으로서 그 존재 이유와 핵심 역할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첫째, 교리의 정통성 수호이다. 종조(宗祖)의 가르침을 받들고, 올바르게 해석된 내용이 담긴 표준화된 경전을 만들
횡성군민에게 1인당 20만원씩 지급하려던 민생회복지원금이 군의회 문턱에서 멈췄다. 횡성군의회는 지난 22일 관련 예산 93억3800만원을 전액 삭감했다. 삭감액을 되살리려는 수정동의안도 본회의에서 부결됐다. 장신상 횡성군수는 "지원금이 가계 부담을 덜고 지역 소비를 늘려 골목상권에 활력을 주는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설명해 왔다. 예산이 삭감된 뒤에도 의회의 지적을 보완해 연내 지급을 재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군민의 살림을 챙기겠다는 약속을 접지 않겠다는 뜻이다. 의회가 제기한 문제를 가볍게 볼 수는 없다. 현재 경제상황이 조례에서 정한 지급 요건에 해당하는지, 재정안정화기금을 사용해도 향후 재정 운용에 무리가 없는지, 지원금이 실제 소비 증가로 이어질지는 검증할 문제다. 93억원이 넘는 예산인 만큼 군도 지급 필요성과 기대 효과를 자료로 입증해야 한다. 그럼에도 횡성군의회는 왜 전액 삭감이어야 했는지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 군이 제출한 자료가 부족했다면 무엇이 빠졌는지 구체적으로 밝히고 보완을 요구했어야 한다. 지급 규모나 방식을 조정할 여지도 검토할 수 있었다. 예산을 모두 삭감한 뒤 ‘효과 검증이 필요하다’는 말만 남겨서는 지원을 기다리는 군민을 납득시
정부가 농지 전수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누가 농지를 소유하고 실제로 경작하는지 확인해 투기성 농지를 가려내겠다는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행정정보와 항공사진을 활용한 기본조사를 마치고 현장 중심의 심층조사를 진행 중이며, 조사 결과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농지의 현실을 살피는 일은 필요하다. 농사를 짓겠다며 땅을 취득한 사람이 개발이익만 기다리는 동안, 정작 농사를 지을 사람은 땅을 구하지 못할 수 있다. 문제는 조사로 드러난 토지 관계를 누구를 위해 바로잡느냐에 있다. ◇ 고려 말, 권세가의 땅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고려 말에는 권세가의 토지 겸병과 대규모 농장 확대가 국가 재정을 흔들고 농민의 경작 기반을 압박했다. 조준 등 개혁파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전(私田) 개혁을 추진했고, 고려는 1391년 과전법을 제정했다. 토지 문제를 장부의 착오에 그치지 않는 권력과 분배의 문제로 본 것이다. 그렇다고 과전법을 농민에게 땅을 고르게 나눠준 제도로 미화할 수는 없다. 개혁은 권세가의 토지 지배를 제약하려 했지만, 새로 마련된 과전의 주요 수조권은 관료에게 지급됐다. 누가 개혁의 대상이 되고 누가 새 제도의 혜택을 받는지까지 살펴야 역사에서 온
추석이었다. 20세기 후반에 태어나 21세기 전반을 사는 사람은 설, 정월 대보름, 추석이 과거에는 얼마나 대단한 명절이었는지 모른다. 그 대단함을 여기에 일일이 풀면 요새 유행하는 ‘늙ㅋㅋ’나 ‘라떼’라며 우습게 여겨질 뿐일 테니 생략하겠다. ‘늙ㅋㅋ’는 ‘아이스께끼’처럼 연속극 '응답하라 1980'에서나 들을 수 있는 과거의 생소한 생활 언어를 세대 차이를 풍자하는 유머의 소재로 삼는 것이고, ‘라떼’는 “흠...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과거의 회상을 젊은 세대가 시답잖게 여긴다는 은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때는 말인데, 일 년 동안 추석이나 설 같은 명절이 아니면 감히 먹을 수 없는 음식, 아니면 먹을거리가 귀했던 시절에나 먹었지 이제는 굳이 먹을 이유도 구할 곳도 없는 음식들이 많았다며 개구리 뒷다리나 참새 구이를 얘기하면 기겁을 할 것이다. 그중에는 사라져도 진작에 사라졌을 것 같은데 아직 꿋꿋하게 버티는 음식도 많은데 대표적인 것이 ‘노란 단무지’다. 그 시절 학교나 일터로 싸갔던 도시락 반찬의 9할은 간장에 절인 콩이나 노란색 단무지였다. 아, 단무지! 소금에 절인 무에 노란 색소와 귀한 설탕을 대신한 사카린 푼 물이면 끝이었던
청년에게 창업을 권하는 정부는 공공조달을 새로운 판로로 제시한다. 첫 거래처를 찾기 어려운 기업에 공공기관의 계약은 사업을 이어갈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청년 창업기업이 입찰 공고를 읽다가 마주하는 질문은 아이디어가 얼마나 좋은지가 아니다. 해당 제품이나 서비스를 ‘직접 생산’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다. 직접생산확인제도에는 이유가 있다. 다른 회사가 만든 제품을 사서 납품하는 업체를 걸러내고, 실제 생산하는 중소기업에 계약 기회를 주려는 것이다. 청년 창업기업도 그 취지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문제는 직접생산 능력을 확인하는 방식이 새로 생긴 기업의 일하는 방식까지 제대로 담아내느냐다. 창업 초기의 청년 기업은 적은 인원으로 시작한다. 기획과 개발의 핵심을 맡으면서 다른 분야는 협업하기도 한다. 정보기술, 디자인, 콘텐츠가 결합된 용역이라면 업무를 칼로 자르듯 품목별로 나누기도 쉽지 않다. 이 기업에 필요한 질문은 사무실에 모든 인력과 장비를 갖췄느냐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계약에서 맡은 핵심 업무를 스스로 수행할 능력이 있는지 살펴야 한다. 물론 모든 공공조달 입찰에 직접생산확인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품목마다 기준이 다르고, 일부 서비스
제향을 다니다 보면 사당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을 만난다. 선현을 모시는 뜻은 같아도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과 제례에 참여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지난 4월 7일 해남군 화원면 화봉리 초동마을 월봉사에서 열린 춘향은 그중에서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월봉사는 김해김씨 감무공파의 파조 김익경의 후손 가운데 찬성사 김석, 교리 김희문과 김광신, 진사 김택남 등 네 분을 모신 사당이다. 이날 제향은 해남향교가 주관했고, 나는 집례를 맡아 의식의 순서를 알리는 홀기를 읽었다. 제관 분정기를 낭독한 뒤 전폐례와 초헌례, 아헌례, 종헌례, 음복례, 망예례가 차례로 이어졌다. 각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문중 후손들의 참여였다. 김대중 씨를 비롯해 김원근·김필중·김필성·김원형·김원철 씨 등 여러 후손이 찬인과 제집사를 맡아 직접 제향에 참여했다. 제향에는 정해진 예법이 있다. 향을 피우고 술잔을 올리는 순서도, 사람마다 맡는 역할도 중요하다. 그 순서를 진행하며 생각했다. 의례가 계속되려면 절차를 아는 사람뿐 아니라 그 일을 맡으러 오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고. 월봉사에서는 후손들이 그 역할을 하고 있었다. 조상의 이름을 기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당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