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아프·프리즈 서울 기간, 삼청나잇을 맞아 갤러리현대에서 김보희 작가의 개인전 《TOWARDS: There Was Light》을 보았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먼저 화면의 크기와 깊이에 마음이 갔다. 40여 년 동안 자연을 바라보고 그 시간을 회화 안에 축적해온 작가의 작업이었다. 한국화의 전통적 재료와 조형 감각에서 출발했지만, 그것을 캔버스와 대형 화면, 현대적인 회화의 언어로 확장해온 궤적이 인상적이었다. 이번 전시에는 대규모 회화 〈The Days〉를 비롯해 제주 정원과 바다, 꽃과 열매 등 오랫동안 바라본 자연을 담은 작품들이 펼쳐져 있었다. 마침 나 역시 최근 동양화의 재료와 기법을 지금의 내 회화 안에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실험하고 있던 참이었다. 서양화의 캔버스 위에 동양의 시간성과 여백, 스며듦과 중첩의 감각을 어떻게 만날 수 있게 할 것인가. 그래서였는지 김보희 작가의 화면 앞에서 조금 더 오래 머물게 되었다. 특히 전시 제목인 ‘TOWARDS’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오랫동안 내 작업을 ‘Eternal Becoming’, 영원한 되어감이라는 말로 설명해왔다. ‘Becoming’이 어떤 완결된 상태가 아니라 계속 생성되고 변화하는
지난 글의 마지막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신분으로서의 양반은 사라져 갔는데, 왜 양반이 향유하던 족보문화는 오히려 사회 전체로 확산되었을까?” 사람들은 양반이 되기 위해 족보 안으로 들어가고자 했지만, 더 많은 사람이 족보에 참여하면서 족보는 더 이상 양반만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이 역설은 한국 족보의 역사를 넘어 한국 사회의 문화변동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신분으로서의 양반은 사라졌지만, 문화로서의 양반은 어떻게 되었을까? 특권의 철폐, 그리고 특권의 보편화 근대로 접어들면서 신분제가 해체되고 양반이라는 신분이 가졌던 제도적 특권은 사라져 갔다. 그러나 양반층이 오랫동안 향유했던 문화까지 함께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흥미로운 일이 일어났다. 과거 일부 계층이 주로 향유하던 문화 가운데 상당 부분은 신분제가 사라진 뒤에도 소멸하지 않고 사회 전체로 확산되었다. 교육이 가장 분명한 사례다. 글을 배우고 책을 읽으며 학문을 익힐 기회가 한때 일부 계층에 집중되어 있었다면, 오늘날 교육은 누구나 누려야 할 보편적인 권리가 되었다. 과거 소수에게 집중되었던 지식과 교육의 기회가 더 많은 사람에게 열린 것이다. 복식도 그렇다. 신분에 따
정부가 임시공휴일을 지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황금연휴’에 대한 기대가 먼저 쏟아진다. 해외여행 항공권을 알아보고 가족 나들이를 계획하는 모습도 되풀이된다. 쉬는 날이 늘어나는 것을 마다할 사람은 많지 않다.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몸과 마음을 회복할 기회가 생긴다는 점에서 임시공휴일의 의미도 분명하다. 문제는 국가가 정한 하루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휴일이 되지는 않는다는 데 있다. 사무직 노동자에게 임시공휴일은 달력에 표시된 온전한 휴일이 될 수 있다. 반면 식당과 편의점, 배달, 돌봄, 경비, 운수업 등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평소보다 더 바쁜 하루가 되기도 한다. 일한 만큼 정당한 수당이나 대체휴일을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에게 임시공휴일은 ‘남들이 쉬는 모습을 지켜보며 일하는 날’에 가깝다. 사업장을 비우기 어려운 영세 자영업자에게도 휴일은 휴식이 아니라 선택하기 어려운 영업 판단이 된다. 누군가의 연휴를 가능하게 하려면 다른 누군가는 교통수단을 운행하고 음식을 만들며 매장을 지켜야 한다. 휴일의 혜택은 널리 홍보되지만 그 휴일을 떠받치는 노동과 비용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임시공휴일을 내수 활성화 수단으로 보는 시각도 점검할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은 족보 안으로 들어가고자 했을까?” 족보는 사람의 계보를 기록한 책이다. 누가 어느 가문에 속하는가, 누구의 후손인가, 어느 파에 속하는가를 밝히고 그 구성원의 계보적 위치를 확인한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족보는 단순히 조상의 이름을 적어놓은 책만은 아니었다. 족보에 이름이 기록된다는 것은 특정 가문의 구성원으로 인정받는다는 의미였으며, 그 가문이 형성한 사회적 관계와 문화적 권위 속에 자신과 후손이 위치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따라서 족보에는 자연스럽게 안과 밖이 있었다. 누가 족보에 들어갈 수 있는가, 누가 어느 선조의 정당한 후손인가, 어디까지 같은 문중의 구성원으로 인정할 것인가가 중요했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 전기와 중기의 족보는 상당 부분 사람을 가르고 경계를 확인하는 ‘구별의 기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족보의 문을 둘러싼 진입과 저항 그런데 조선 후기로 가면서 흥미로운 변화가 나타난다. 족보 밖에 있던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안으로 들어가고자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이러한 현상은 주로 비양반층의 양반지향이나 신분상승 욕구,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타난 모록(冒錄)과 위보(僞譜)의 문제로 설명되어 왔다. 충분한 역사적 근
얼마 전, 성남시의 한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종사자의 폭행으로 장애당사자가 안타깝게 목숨을 잃는 참극이 발생했다. 필자는 이를 규탄하는 결의대회 현장, 그리고 용인시정연구원에서 열린 ‘무장애 관광도시 조성 세미나’에 함께 참여하며 우리 사회 지도층의 일천한 장애인식에 깊은 탄식을 금할 수 없었다. 세상이 변했다, 변한다 입을 모아 말하지만, 왜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할 약자들과 함께하는 사회의 가치 철학은 제자리걸음인지 뼈아프게 절감한 순간들이었다. 폭행 사망 사건을 규탄하는 자리에 참석한 한 시의원은 연대 발언을 빙자해 여전히 시혜와 동정 어린 시선을 거두지 않았고, 장애인의 자립생활에 대한 무지와 회의적인 태도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무장애 관광 세미나의 상황은 더 참담했다. 미래 세대를 가르치는 한 대학교수는 “여행이란 모름지기 역경과 고난을 겪어야 제맛이 아니냐”는 식의 망언을 던졌다. 무장애를 외치고 편의시설 확충을 외치는 것이 여행의 본질을 해친다는 취지로 이해되고 오해할 수 있는 이 발언은 충격을 넘어 참담함을 안겨주었다. 구시대적 발상에 갇혀 차별을 당연시하는 지도층 인사들에게 묻고 싶다. 장애인이라고 해서 늘 안온하고 편의시설이 완비된 곳만 찾아다
대한민국 공공조달 시장에서 '여성기업'에 대한 수의계약 제도는 수수께끼 같은 존재다. 표면적으로는 젠더 격차 완화와 약자 보호라는 명분을 내걸고 있지만, 현장의 실상은 "과연 이 제도가 진정한 여성 기업가를 육성하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게 만든다. 공공용역 및 조달 시장의 최전선에서 경쟁해 온 홍보대행사 대표로서, 나는 이제 이 제도의 시효가 다했음을 고백하고 '여성기업 수의계약 제도의 폐지'를 강력히 주장하고자 한다. 첫째, 명의만 빌려 쓰는 '바지사장'과 편법의 온상이 되었다. 현재 여성기업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여성기업은 공공기관 수의계약 시 추정가격 5,000만 원 이하(일반 기업은 2,000만 원 이하)까지 특혜를 받는다. 문제는 이 금액적 이점을 노리고 실질적 경영권은 남성 배우자나 친인척이 행사하면서 대표자 명의만 여성으로 등록하는 이른바 '위장 여성기업'이 판을 친다는 점이다. 이는 공정한 경쟁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실력으로 승부하려는 진짜 여성 기업가들에게까지 불신의 그늘을 드리운다. 둘째, 여성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피터팬 증후군'과 소기업 안주를 부추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 제도가 여성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
사회복지 현장은 늘 “사람이 사람을 살리는 곳”이라 불린다. 그러나 오늘날 복지시설과 현장의 실핏줄 역할을 하는 사회복지사들이 처한 현실은 과연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인가. 헌신과 묵묵한 노고로 복지 사각지대를 메워 온 현장의 복지사들이 감내해 온 아픔과 한계는 이제 단순한 직업적 스트레스의 수준을 넘어섰다. ‘감정노동’과 ‘행정 폭탄’ 사이, 무너지는 현장 현장 사회복지사들이 마주하는 가장 큰 어려움은 안전의 부재와 과중한 업무량이다. 위험에 노출된 이용자나 악성 민원인으로부터 폭언, 폭행, 모욕을 당하는 일이 빈번함에도 현장에는 이들을 보호할 실질적인 방화벽이 부족하다. 헌신이라는 미명 아래 위험조차 개인이 참아내야 하는 구조가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과도한 행정 절차와 보조금 집행 관련 서류 작업은 복지사의 본래 임무인 ‘이용자 중심의 밀착 서비스’를 가로막는다. 사람을 마주하고 상담하며 온기를 나누어야 할 시간에 평가 대비용 서류를 작성하느라 밤을 지새우는 기형적인 구조는 복지사들에게 극심한 번아웃과 자괴감을 안겨준다. 여기에 기관장의 폭행이나 언어폭력 등까지 더해진다면 사회복지사가 감당해야 할 고통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157년 만에 이뤄진 성균관 대성전 보수공사가 35개월 만에 잘 마무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국 유림의 정신적 고향이자 한국인들의 생활 전반에 깃들어 있는 의식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유교문화의 정수(精髓)로 불리는 곳이 그동안의 시간 변화에 따라 점점 쇠락해가고 있음을 느껴왔고, 지방의 향교나 서원에서도 종종 시행되는 보수공사가 왜 성균관에서는 이뤄지지 않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던 참에 이렇게라도 진행된 것은 천만다행이다. 여기에는 문화재를 소중히 여기며 정기적인 검사를 통해 알뜰히 살펴온 국가유산청 및 종로구청, 협의를 통해 시작을 위한 준비를 진행했던 손진우 원임 성균관장, 장기간의 공사에 여러 가지로 보조를 맞춰준 현재의 최종수 성균관장을 비롯한 직원들의 수고가 컸다. 다만 아쉬운 점은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각종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성균관은 단순한 건물이나 시설이 아니라 국가를 대표하는 유적이자 자랑이었기에 여러 번의 소실(燒失) 속에서도 다시 중건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 유생들을 비롯한 선배유림들의 재화(財貨)와 노력이 함께 했음을 알고 있는데 이번에는 그런 과정을 통해 모아진 자금이 공사에 직접 사용되었다는 소식은 들리지
태권도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무예이자 세계인이 함께 수련하는 문화 자산이다. 세계 곳곳의 도장에는 태극기가 걸리고, 수련생들은 우리말 구령에 맞춰 품새와 겨루기를 익힌다.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세계에 알린 가장 강력한 문화 자산 가운데 하나다. 전북 무주에 조성된 태권도원은 단순한 체육시설이나 관광단지가 아니다. 경기와 수련, 연구, 교육, 교류 기능을 갖춘 세계 유일의 태권도 복합공간이자 국가가 만든 ‘세계 태권도의 성지’다. 태권도진흥재단도 「태권도 진흥 및 태권도공원 조성 등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설립된 공공기관이다. 태권도원의 효율적인 관리·운영과 태권도의 발전, 국제적 위상 제고가 재단에 주어진 법정 임무다. 태권도의 조사·연구와 보존·보급, 국내외 진흥사업도 수행한다. 그렇기에 태권도원을 운영하는 사람과 조직에는 더욱 엄격한 공정성과 책임이 요구된다. 태권도가 가르치는 절제와 예의, 원칙은 경기장 안에서만 지켜야 할 덕목이 아니다. 사람을 임명하고 조직을 운영하는 과정에서도 그대로 적용돼야 한다. 지난해 태권도원 노동조합은 당시 서모 대표이사의 인사·노무관리에 문제가 있다며 총파업에 나섰다. 특정 직원과 다른 직원들의 임금 인상률 차이, 채용 문
이정학 불가리 코리아 대표가 한국과 이탈리아의 우호 증진과 문화·경제 교류 확대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이탈리아 공화국의 ‘이탈리아의 별 훈장(Ordine della Stella d’Italia)’ 기사장(Cavaliere)을 수훈했다. ‘이탈리아의 별 훈장’은 이탈리아와 다른 국가 간 우호 관계와 협력 증진에 기여한 인사에게 수여되는 훈장이다. 이 대표는 15년 이상 럭셔리 산업에서 경력을 쌓았으며, 2015년 불가리에 합류한 뒤 주요 직책을 거쳐 2018년부터 불가리 코리아 대표를 맡고 있다. 재임 기간에는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과 주한 이탈리아 상공회의소 등과 협력하며 양국 간 문화·경제 교류 활동에 참여해왔다. 불가리 코리아는 2018년부터 주한 이탈리아 상공회의소 회원사로 활동하며 이탈리아 공화국의 날 기념행사와 갈라 디너 등 관련 행사와 프로젝트를 지원해왔다. 지난해 서울에서 열린 카라바조 전시에도 후원사로 참여했다. 문화예술 분야 교류는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불가리는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과 주한 이탈리아 문화원이 2026 프리즈 서울과 연계해 개최하는 ‘Italy at Frieze: The Golden Trace’에 메인 스폰서로 참여했다. 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