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라고 하면 흔히 남성의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부계혈통을 기록한 책이니, 조선시대 여성은 족보에서 배제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 족보를 수백 년의 흐름 속에서 살펴보면 이야기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여성은 족보에서 사라진 적이 없다. 다만 시대에 따라 족보 속에서 ‘자리’가 달라졌다. 이 변화는 한국 족보를 세계의 다른 계보 기록과 비교할 때 매우 흥미로운 연구 주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조선 전기, 딸은 친정 족보의 구성원이었다.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족보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부계 중심 족보와 모습이 상당히 다르다. 아들과 딸을 출생순으로 기록하고, 출가한 딸의 경우 사위를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에게서 태어난 외손과 그 후손까지 이어서 기록한 사례가 나타난다. 특히 여성의 실명을 직접 기록하지 않고 사위의 이름을 적었다고 해서 여성이 계보에서 제외되었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에 누구를 기록했는가이다. 사위가 다른 여성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녀가 아니라, 그 집안의 딸에게서 태어난 자녀를 외손으로 구별하여 기록했다. 결국 계보를 이어주는 혈연상의 연결점은 그 집안의 딸이었다. 즉
지난 8월 3일 오전 10시 16분께 한울원전 6호기의 사용후핵연료를 신한울원전 2호기로 옮기던 중 붕산수 일부가 외부로 누출됐다. 현장 운전원의 오조작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사고는 이미 발생했다. 이제 울진군민이 묻는 것은 분명하다. 원자력안전위원회와 한국수력원자력은 언제 사고를 알았으며, 왜 주민에게 곧바로 알리지 않았는가. 울진군의회 원전관련특별위원회는 27일 성명서를 내고 사고 경위와 누출량, 방사선·환경 영향, 정보 미공개 과정과 책임 소재를 밝히라고 요구했다. 지역주민이 참여하는 조사기구 구성과 사용후핵연료 호기 간 이송 중단도 촉구했다. 『한비자』 「유로」편에는 명의 편작이 채환공의 병을 거듭 경고한 이야기가 나온다. 편작은 처음에는 병이 피부에 있다고 했고, 시간이 흐른 뒤에는 살과 장위까지 들어갔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채환공은 “과인은 병이 없다”며 듣지 않았다. 마침내 병이 골수에 이르자 편작은 더 이상 치료할 수 없다며 돌아섰다. 작은 병을 인정하지 않고 치료를 거부한 채환공은 결국 목숨을 잃었다. 여기에서 잘못이나 결함을 숨기고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를 뜻하는 ‘휘질기의(諱疾忌醫)’라는 말이 나왔다. 병을 숨기고 의원을 꺼린다는 뜻
전남광주가 마지막 순간 국립의대 신설 추진계획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그러나 끝내 채우지 못한 한 칸이 있다. 목포대와 순천대의 통합 합의서다. 의대 신설을 둘러ㆍ싼 논의가 대학 통합이라는 벽에 막히면서 전남광주에 배정된 의대 정원 100명은 이제 경북과의 경쟁 구도로 넘어갔다. 그렇다고 100명을 포기할 수는 없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전남광주는 ‘플랜 B’를 통해 통합이 성사되지 않더라도 한 대학에 의대 정원을 배정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정원 100명을 달라”는 주장만으로는 부족하다. 공교롭게도 의대 정원 신청 마감일, 국립대병원의 관리체계가 교육부에서 보건복지부로 넘어갔다. 이 변화는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의대는 학생을 가르치는 공간이지만, 병원은 의사를 키우고 지역의 생명을 지키는 현장이다. 결국 의대가 어디에 설치되느냐 못지않게 어디에서 교육하고, 어떤 병원에서 수련하며, 지역의료를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가 중요해졌다. 이제 의대 신설의 승부처는 ‘대학’에서 ‘병원’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 경북은 경국대와 안동시의료원을 연계해 교육병원 체계를 구상하고 있다. 반면 전남광주는 아직 의대와 교
용인 반다비체육센터 건립안이 또다시 멈춰 섰다. 용인특례시의회 자치행정위원회가 지난 7월 23일 실시한 표결 결과는 찬성 4표, 반대 3표, 기권 1표였다. 찬성이 반대보다 많았지만 의결에 필요한 과반 5표를 얻지 못하면서 안건은 세 번째로 부결됐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본질은 ‘4·3·1’이라는 숫자에만 있지 않다. 시민의 대표로 선출된 시의원들이 왜 자신의 최종 선택을 무기명 투표 뒤에 감췄는지, 그 판단이 시민의 이익과 사업의 타당성을 고민한 결과였는지, 아니면 정당 내부의 기류와 의회 밖 영향력에 흔들린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문이 남았다는 데 있다. 지방의원은 특정 정파나 과거 권력의 하수인이 아니다. 공천권과 정치적 영향력에 얽매여 다른 사람의 뜻을 대신 행사하는 조직원은 더더욱 아니다. 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은 지역주민의 투표로 선출됐으며, 시민으로부터 독립적인 판단 권한을 위임받은 대표자다. 시의원이라면 정당보다 먼저 지역주민을 바라봐야 한다. 당론이라는 장막에 숨어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해서도 안 된다. 정당이 정책 방향을 공유하고 소속 의원들이 의견을 조율하는 것은 정당정치의 일부다. 그러나 당론이 의원 개인의 판단과 책임을 지워주는 면죄부가
약속의 의미는 무엇일까. 약속은 서로에 대한 존중이자 관계의 증명이며, 불안을 덜어주는 안전장치다. 또한 스스로 내뱉은 언어에 대한 책임이기도 하다. 결국 약속은 거창한 서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안에서 서로를 지켜내기 위한 정성과 책임의 무게일 것이다. 오늘 아침도 필자는 '경기도 교통약자 광역이동지원센터' 호출 앱을 붙들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5분의 차이로 끝없는 기다림이 시작될지, 아니면 준비도 채 마치지 못했는데 지난번처럼 5분 만에 차량이 도착해 낭패를 볼지 모르는 딜레마 때문이다. 결국 망설이다 5분을 넘겼고 배차 대기 순번은 23번으로 밀려났다. 23번이라는 대기 순번이 언제 끝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경기도 광역 이동지원, 이른바 ‘광역콜’을 이용해 본 사람들은 안다. 이 차를 타야만 하는 장애시민의 일상에는 ‘시간 약속’이라는 평범한 권리조차 온전히 보장받기 어렵다는 사실을 말이다. 얼마 전 필자의 지인은 이천시에서 오후 3시 반에 즉시콜을 호출했다. 다행히 1번이라는 순번을 받아 바로 차량이 배차되겠거니 했지만, 실제 차량은 거의 오후 7시가 다 되어 배차됐다고 한다. 이천시는 배정된 광역콜 차량 수가 적어 겨우 3대씩 교대로 운
금융회사의 성적표에는 서로 성격이 다른 숫자가 함께 놓인다. 당장 얼마를 벌었는지를 보여주는 이익이 있는가 하면, 고객이 얼마나 많은 자산을 맡기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숫자도 있다. 미래에셋증권의 올해 2분기 실적을 들여다보면서 기자의 눈길이 머문 곳도 바로 이 두 지점이었다. 미래에셋증권의 2분기 연결 기준 당기순이익은 1조 9,052억 원, 세전이익은 2조 5,287억 원에 달했고 상반기 연환산 자기자본이익률(ROE)은 39.5%를 기록했다. 충분히 눈에 띄는 실적이지만, 그보다 더 의미 있게 다가온 숫자는 80조 8,000억 원까지 늘어난 연금자산과 784조 원에 이르는 국내외 고객자산이었다. 연금은 단순한 투자금과는 성격이 다르다. 지금 당장 쓰지 않고 10년, 20년 뒤를 위해 남겨둔 돈이며, 많은 사람에게 은퇴 이후의 생활을 지탱하는 중요한 자산이다. 이런 돈이 한 금융회사에 80조 원 넘게 모였다는 사실은 단순한 영업력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오랜 기간 자신의 자산을 맡겨도 된다는 고객의 판단과 신뢰가 축적돼야 가능한 숫자이기 때문이다. 미래에셋증권의 연금자산은 퇴직연금 52조 원과 개인연금 28조 8,000억 원으로 구성돼 있다. 개인형퇴직연금(
“밖으로 나가는 문턱 하나를 넘지 못해 하루 24시간을 방 안에서만 보냅니다. 나에게 집은 휴식처가 아니라 갇혀 있는 감옥입니다” 장애인 당사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런 말을 어렵지 않게 접하게 된다. 현관 앞 작은 문턱 하나, 휠체어가 들어가지 않는 화장실 문, 손이 닿지 않는 수도꼭지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하루의 삶 전체를 가로막는 장벽이 된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다. 집 안에 장애인 편의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면 일상은 편안한 휴식이 아니라 매 순간 몸과 씨름해야 하는 전쟁에 가까울 것이다. 장애인에게 ‘집’이 갖는 의미는 비장애인이 생각하는 것과 다를 수밖에 없다. 비장애인에게 집은 하루를 마치고 돌아와 쉬는 공간이지만, 이동에 제약이 있는 장애인에게 구조가 맞지 않는 집은 사회와의 연결을 끊는 또 하나의 장벽이 될 수 있다. 특히 오래된 단독주택이나 빌라, 반지하주택에서는 좁은 출입구와 높은 문턱, 미끄러운 화장실 바닥, 휠체어 회전이 어려운 공간 등이 일상의 위험으로 이어진다. 경기도에는 약 58만 명의 등록장애인이 거주하고 있다. 전국에서 장애인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인 만큼 주거환경 개선 역시 단순한 복지사업이 아니라 삶의 안전과
‘탈시설’과 ‘장애인 자립’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우리는 흔히 어떤 풍경을 떠올릴까? 많은 이들이 시설이나 부모님의 품을 떠나 원룸 하나를 얻어 나가는 장면, 즉 ‘독거(獨居)’를 떠올리곤 한다. 그리고는 묻는다. “혼자서 밥은 먹을 수 있나?”, “경제활동은 어떻게 하려고 그러지?” 그러나 단언컨대 자립은 결코 ‘혼자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가 말하는 참된 자립이란 누군가의 일방적인 보호나 통제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자기결정권’을 갖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내가 속한 지역사회 안에서 수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로 바로 서는 과정이다. 생각해 보자. 비장애인 중 그 누구도 완전한 의미에서 ‘혼자’ 살아가지 않는다. 우리는 직장에서 동료를 만나고, 이웃과 인사를 나누며, 문제가 생기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다양한 커뮤니티 속에서 관계를 맺으며 삶을 영위한다. 이처럼 인간의 삶은 본질적으로 타인과의 연결 위에 존재한다. 그런데 유독 장애인이나 보호연장아동, 자립준비청년에게만큼은 ‘자립했으니 이제부터는 모든 것을 혼자 힘으로 해결하라’는 가혹한 잣대를 대곤 한다. 이러한 무관심과 냉대는
‘신이나 초자연적인 절대자 또는 힘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인간 생활의 고뇌를 해결하고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추구하는 문화 체계’라고 정의되는 종교는 우리 인간이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지금의 문명을 이룩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해왔다는 것이 통설이다. 게다가 인공지능(AI)으로 상징되는 현재에 이어 미래 사회에서도 ‘치열한 경쟁’ ‘개인 위주의 생활’ ‘군중 속의 고독’ ‘인간성 상실’ 등의 모습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이런 내일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성찰과 고민의 방향들이 모색되고 있다. 그런데 이 시대 한국 종교계의 현실은 어떠한가. 수천 년을 함께해 온 종교계의 신뢰도가 대기업보다 낮아진 지 오래이고, 믿는 종교가 없다는 응답은 이미 과반을 훨씬 넘었으며, 특히 18~29세 청년층의 ‘종교가 없다’는 응답은 70%를 웃돌고 있다. 다양한 이유와 원인이 작용하여 나타난 결과이지만 ‘공정와 정의’에 대한 가치 평가에 민감한 젊은이들에게는 종교계 지도자들이 보이는 도덕적 파산과 재정 비리, 반(反)민주적인 모습 등이 위험 수위를 넘어 임계점에 도달한 것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학력 위조, 종손 사칭, 일왕 생일파티 참석, 불법비상계엄 찬성, 도박
한국에는 수많은 족보가 전해진다. 임진왜란 이전에 간행된 족보도 여러 종이 현존하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후손의 이름을 새롭게 더하면서 족보는 ‘살아 있는 기록’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오래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 되는 것은 아니다. 유네스코가 주목하는 것은 단순히 가장 오래된 기록이 아니다. 그 기록이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어떤 의미를 지니며, 왜 인류가 함께 기억하고 보존해야 하는지를 중요하게 본다. 따라서 한국 족보가 세계기록유산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왜 인류 공동의 기억이 되어야 하는지를 국제사회가 이해할 수 있는 논리와 자료로 증명해야 한다. 바로 그 답을 찾고 체계화하기 위해 『한국족보백서』를 편찬하려 한다. 한 권의 족보에서 ‘살아 있는 기록 생태계’로 우리가 세계에 설명해야 할 것은 족보의 연대나 수량만이 아니다. 한국 족보의 진정한 가치는 개별 문중의 계보책이라는 차원을 넘어, 수백 년 동안 축적되고 계승되어 온 거대한 기록체계라는 데 있다. 족보에는 사람의 이름만 적혀 있는 것이 아니다. 가족과 친족관계, 혼인과 입양, 분파와 합보, 지역사회의 형성과 이동, 공동체의 변화와 사회질서의 모습이 세대를 거쳐 축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