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의 평가 방식을 둘러싼 논의가 다시 교육 현장의 중심에 섰다. 절대평가 과목 확대와 서·논술형 문항 도입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학생과 학부모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익숙한 제도가 바뀌면 걱정이 앞서는 것은 자연스럽다. 어떤 문제가 출제될지, 기존 공부 방식이 통할지, 사교육 부담이 더 커지지는 않을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다만 이번 변화는 시험 문제의 형식만 바꾸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우리 교육이 무엇을 가르치고, 학생에게 어떤 능력을 요구할 것인지 되묻는 계기가 돼야 한다. 오랜 시간 입시는 정답을 빠르게 찾고 실수를 줄이는 경쟁에 가까웠다. 한두 문제 차이로 등급이 갈렸고, 학생들은 자신이 무엇을 이해했는지보다 다른 학생보다 몇 점을 더 받았는지를 먼저 살폈다. 상대평가 체제에서는 개인의 성취보다 순위가 앞선다. 학생이 충분한 학업 능력을 갖췄더라도 다른 학생보다 점수가 낮으면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배움의 과정이 성장보다 비교에 매이기 쉬운 구조다. 절대평가는 정해진 성취 기준에 학생이 어느 정도 도달했는지를 살피는 방식이다. 제도가 제대로 설계된다면 남을 앞서는 경쟁에서 벗어나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확인하고 보완하는 학습으로
부산 돌려차기 사건은 농담의 소재가 아니다. 피해자가 살아남기 위해 견딘 시간을 웃음거리로 바꾸는 순간, 정치는 최소한의 인간성마저 잃는다. 지난 4일 국회에서 열린 ‘보완수사권 폐지, 지옥문이 열렸다’ 간담회는 범죄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고 형사사법제도의 허점을 따져 묻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도 참석했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은 맞은편에 앉은 진종오 의원에게 말했다. “진종오 의원님, 돌려차기 한판 하지?” 진 의원은 자신은 발보다 손을 더 잘 쓴다는 취지로 맞장구쳤다고 한다. 피해자는 현장에서 이 말을 듣지 못하고 뒤늦게 접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렇다고 문제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듣고 있을 때만 조심하는 태도를 우리는 예의라고 부르지 않는다. 유가에서는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스스로를 삼가는 ‘신독(愼獨)’을 군자의 근본으로 삼았다. 피해자가 자리에 없었기 때문에 나온 말이라면 문제는 오히려 더 무겁다. 아무도 듣지 않는다고 여긴 순간에 드러난 말이 그 사람의 평소 품격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자리는 ‘돌려차기’라는 범죄로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입은 피해자가 용기를 내 참석한 자
땅끝을 찾은 사람들은 대개 두 가지 풍경을 기억한다. 사자봉 정상에 횃불처럼 서 있는 전망대와 바다를 향해 뾰족하게 뻗은 삼각뿔 모양의 땅끝탑이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사진을 찍고 ‘북위 34도 17분 32초’라는 숫자를 확인한다. 다도해 너머로 시선을 던진 뒤에는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간다. 그런데 땅끝점 표지석 옆에는 관광객의 시선이 좀처럼 머물지 않는 석상 하나가 서 있다. 나이 든 여인의 모습이다. 안내판을 읽지 않으면 무심코 지나치기 쉽고, 읽더라도 그 사연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이 석상의 주인공은 갈두마을 사람들이 오랜 세월 ‘당할머니’라고 부르며 모셔 온 마을의 수호신, 칡머리 당할머니다. 갈두, 칡이 우거진 땅의 이름 땅끝마을의 본래 이름은 갈두(葛頭)다. 한자를 그대로 풀면 ‘칡 머리’라는 뜻이다. 갈두산 일대에 칡이 무성해 주민들이 예부터 이곳을 ‘칡머리’라고 불렀고, 이를 한자로 옮겨 갈두가 됐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 지역에서 난 칡이 임금에게 올리는 진상품이었다는 말도 내려온다. 바닷가임에도 마실 물이 귀해 본래 갈수리(渴水里)라고 불렀으나, 이름의 뜻이 좋지 않아 갈두리로 바꿨다는 설명도 있다. 어느 이야기가 먼저인지는 분명하지
"산불여 두륜, 해불여 땅끝, 곡불여 해남, 문불여 녹우당, 학불여 해남향교” 옛 선조들은 호남 각 고장의 특징과 자부심을 담아 ‘팔불여(八不如)’라는 표현을 남겼다. 이는 어느 지역이 절대적으로 우월하다는 뜻이 아니라, 각 고장이 지닌 고유한 가치와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기억하기 위한 문화적 표현이었다. 오늘날 해남에도 새로운 시대의 ‘팔불여’가 필요하다. 해남은 단순히 한반도의 끝에 있는 땅이 아니다. 산과 바다, 넓은 들과 깊은 문화가 함께 살아 숨 쉬는 남도의 중심이다. 산불여 두륜(山不如 頭輪) 두륜산은 해남을 대표하는 영산이다. 천년고찰 대흥사를 품은 두륜산은 자연과 역사, 종교와 문화가 어우러진 치유와 사색의 공간이다. 해불여 땅끝(海不如 地端) 땅끝은 단순한 국토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희망의 상징이다. 다도해의 아름다운 풍광과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삶은 해남만의 소중한 자산이다. 곡불여 해남(穀不如 海南) 해남은 비옥한 토양과 넓은 들판을 바탕으로 쌀, 고구마, 배추, 마늘 등 전국적인 명성을 가진 농산물을 생산하는 생명의 땅이다. 들판에는 농민들의 땀과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문불여 녹우당(文不如 綠雨堂) 고산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다급한 순간 "해남!"을 외치는 장면을 보며 필자는 '해남을 이렇게 강렬하게 홍보해 주는구나' 하고 반가웠다. 그런데 누군가는 "왜 땅끝 해남이 멀다는 설정이 됐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오히려 의문이 들었다. 정말 땅끝은 가까워야 하는 것일까. 해남을 이야기할 때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생각보다 가깝습니다." 교통망이 좋아지고 접근성이 개선됐다는 점을 알리기 위한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과연 땅끝의 가치를 '가깝다'는 말로 설명하는 것이 맞는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땅끝은 대한민국의 끝이다. 끝이라는 말에는 단순한 거리 이상의 상징이 담겨 있다. 가장 먼 곳을 향해 떠나는 여정, 그 끝에서 만나는 바다와 하늘,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생각하게 하는 공간이 바로 땅끝이다. 그래서 땅끝은 멀어야 한다. 멀기 때문에 특별하고, 멀기 때문에 신비롭다. 현실을 보더라도 해남은 결코 가까운 곳이 아니다. 서울에서 해남까지는 비행기와 KTX, 자동차를 갈아타며 적지 않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반면 일본 후쿠오카나 제주도는 비행기로 30분 남짓이면 닿을 수 있는 시대다. 그렇다고 해서 해남의 가치가
요즘 내 일은 전국의 지방의회를 찾아다니며 의원들을 마주하는 것이다. 강의장에서 만나는 표정은 제각각이다. 당선의 기쁨이 아직 가시지 않은 이들도 있지만, 유독 눈에 밟히는 이들은 걱정 가득한 초선 의원들이다. 자신을 뽑아준 시민을 실망시키지 않을까, 4년 뒤 지역을 조금이라도 바꿔놓을 수 있을까 두려워하는 얼굴들이다. 쉬는 시간이 되면 내게 다가와 속내를 털어놓곤 한다.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당선된 날부터 매일 두렵습니다." 그 질문을 들으면 나는 도리어 마음이 놓인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사람만 그런 걱정을 하니까.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내고 두려워할 줄 아는 태도, 그게 곧 정치인의 간절함이자 성장의 출발점이다. 질문을 품고 왔다가 답을 찾고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는 의원들을 볼 때마다 실감한다. 정치에도 배움의 표정이 있구나. 사실 지방의원에게는 자격증이 없다. 의사나 변호사는 엄격한 수습 과정을 거치고, 공무원도 임용과 교육을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수천억, 수조 원의 예산을 심의하고 주민의 삶을 바꾸는 조례를 만드는 지방의원은 선거가 끝나는 순간 선출된 권력이 된다. 물론 민주주의에서 시민의 선택보다 더 큰 자격은 없다. 다만 당선은 자격의
장애인에게 있어 최대의 복지는 무엇일까? 단언컨대 그것은 ‘일자리’다. 노동은 단순히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을 넘어, 한 인간이 사회적 주체로서 자신의 존엄성을 증명하고 자아를 실현하는 가장 완벽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최근 이러한 시대적 요구와 니즈를 반영하듯 지자체와 정부 차원에서 장애인 일자리가 양적으로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단시간 복지 일자리부터 전일제, 체육 및 문화예술 일자리, 그리고 중증장애인을 위한 권리중심형 일자리와 재택근무 모니터링 일자리까지 겉보기에는 제법 다채로운 진용을 갖춘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 장애인들의 삶은 일자리와 함께 윤택해 지고 풍성해 졌을까? 그러나 화려한 포장지를 한 꺼풀만 벗겨내면 차마 양질이라 부르기 민망한 차가운 현실이 드러난다. 현재 양산되는 장애인 일자리의 절대다수는 단시간 근로이거나 반일제 근무에 불과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과거 장애 당사자들이 비장애인 중심의 거친 기업 환경 속에서도 치열하게 경쟁하며 당당히 꿰찼던 ‘8시간 전일제 근무’의 양질의 일자리들이 오히려 눈에 띄게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중증장애인을 위한 맞춤형 단시간 일자리가 필요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중증장애인 지원 확대를 빌
지방에서 조그만 펜션을 운영하는 지인이 엊그제 펜션 시작 이래 최악의 불경기라며 하소연을 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잦은 만실에 7, 8월 한여름에는 방이 없어 예약을 못 받았는데 올해는 빈방이 더 많다며 걱정이 태산이었다. 동네 단골 정육점 사장도 올해 손님이 눈에 띄게 줄어 폐업을 심각하게 고려 중이라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아닌 게 아니라 동네 주변을 돌다 보면 닫힌 문에 ‘임대’를 내건 가게가 예전보다 많이 보인다. 동네 장사가 안 된다는 말은 곧 돈을 써야 할 이웃 역시 지갑이 비었다는 말이다. 매스컴에서는 날이면 날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도체로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여 직원들에게 수억 원씩 보너스를 뿌린다고 호들갑인데 그저 먼 동네 잔치일 뿐 내 통장에는 신사임당은커녕 세종대왕 한 장 보내주지 않는다. 주가가 단군 이래 최대로 오른다며 6.25 난리는 난리도 아닌 터라 가만히 있으면 나만 바보 되나 싶어 없는 돈 끌어모아 주식에다 걸었는데, 레버리지라는 이상한 놈 때문에 주식 시장이 경마장보다 예측이 어려운 돈 놓고 돈 먹기 도박장이 돼버려, 거름 지고 장에 따라갔던 서민과 취업난으로 허덕이는 청년들만 쌍코피를 흘린다. 주가가 치솟을 때는
한국수자원공사가 체감온도 40℃에 육박하는 폭염 속에서 건설 현장 근로자의 온열질환 예방과 작업중지 체계 점검에 나섰다. 윤석대 한국수자원공사 사장은 7월 31일 경북 구미시 해평면 구미 하이테크밸리 2단계 사업 현장을 찾아 폭염 대응 안전수칙과 근로자 보호 대책의 이행 상황을 점검했다. 이번 점검은 장마 이후 폭염이 본격화되면서 옥외 작업이 많은 건설 현장의 온열질환 위험이 커진 데 따른 것이다. 현장에서는 무더위쉼터의 냉방 상태와 접근성, 폭염 저감 시설, 예방 물품 지급 현황 등이 중점적으로 확인됐다. 최근 일부 지역의 체감온도가 40℃에 가까워지는 등 전국적으로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폭염 상황의 심각성을 고려해 지난 7월 27일 위기경보 단계를 ‘심각’으로 상향하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비상 1단계를 가동했다. 한국수자원공사는 지난 6월부터 전국 사업장을 대상으로 폭염 대응 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현장에는 물과 냉방장치, 휴식, 보랭장구, 119 신고 등 ‘폭염안전 5대 기본수칙’을 안내하는 포스터와 현수막을 설치했다. 근로자가 안전 정보를 바로 확인할 수 있도록 안전모에는 큐알(QR)코드도 부착했다. 냉토시와 안전모 햇빛 가리개 등 온열질환
13년 5개월 동안 대한축구협회를 이끌다 지난 6일 물러난 정몽규 전 회장이 30일 다시 여의도를 찾았다. 이번에 그가 앉은 자리는 축구협회장석이 아니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청문회의 증인석이었다. 국민적 신뢰를 잃은 축구협회의 운영 난맥과 감독 선임 과정의 공정성, 북중미 월드컵 부진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정 전 회장은 모두발언에서 고개를 숙였다. 재임 기간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노력했으나 일련의 논란과 북중미 월드컵의 미흡한 결과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축구협회장으로서 책임감을 통감한다는 말도 뒤따랐다. 사과의 끝에는 작별 인사가 놓였다. 회장직에서 물러난 만큼 앞으로는 기업인으로서 경영에 집중하며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것이었다. 오랜 기간 축구협회를 이끌며 누적된 문제를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지 설명하기보다, 이제는 기업인의 자리로 돌아가겠다는 선언처럼 들렸다. 책임을 말하면서도 책임을 져야 할 자리는 이미 떠났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웠다. 질의가 시작되자 사과의 실질은 더욱 흐릿해졌다.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팀이 월드컵 16강에 진출했더라도 청문회가 열렸겠느냐?"고 묻자, 정 전 회장은 "16강에 올랐다면 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