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이주 울진군수는 23일 오후 5시 울진군청 대회의실에서 열리는 목요특강에 참석한다. 이날 특강은 울진 출신 장원섭 교수가 ‘울진과 정담 장군’을 주제로 진행한다.
성균관에서 필자의 5대 조부이신 김일표 할아버지께 수여한 효 표창장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김공(金公)은 명문의 후예로서 하늘이 내린 효심으로 홀어머니를 지성으로 봉양하던 중, 어머니께서 우연히 병을 얻어 편찮으시니 어머니 건강을 살펴보기 위해 대변을 손수 맛을 보면서 돌보셨다. 그러다가 결국 어머님이 돌아가시게 되자 어머니 산소에서 시묘(侍墓)살이 3년을 하면서 비바람을 피하지 않았다”고 적혀있다. 이 내용을 보면 어머니의 위중한 상태를 어떻게든 회복하여 소생시켜 보고자 하는 그 절박했던 심정과 어머님이 돌아가셔서 산소에 모셨지만 차마 어머니 곁을 떠나지 못하는 자식의 안타까운 처지가 잘 나타나 있다. 그리하여 흔히 거론되는 명제(命題)이기는 하지만, 오늘날 우리부모들은 자식에게 어떤 존재이며 과거와는 어떻게 비견되고 있는지를 지금의 사실들을 통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물론 오래전 일이기도 하고 워낙 의학이 발달하지 않은 때라 그러했겠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편찮으신 어머니의 건강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어머니 대변을 손수 맛을 보면서 돌보셨다? 요즘 세상에서는 상상하기조차 어렵고 들어본 적도 없는, 그야말로 표창내용을 마주하고 있는 이
한국수력원자력 이용희 전 원전건설기술처장이 제23대 한울원자력본부장으로 취임했다. 한울원자력본부는 이용희 신임 본부장이 지난 20일 공식 취임해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 본부장은 취임사를 통해 원자력발전소 운영의 최우선 가치로 안전을 제시하고, 모든 업무 과정에서 규정과 절차를 철저히 준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조직 운영과 관련해서는 구성원들이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건강하고 행복한 일터를 조성하겠다고 강조했다. 지역사회와의 소통을 기반으로 한 상생경영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발전소 운영과 지역 발전이 함께 이뤄질 수 있도록 주민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주요 사업과 현안에 대해 진정성 있게 설명하겠다는 방침이다. 이 본부장은 “한울원자력본부가 지역사회와 같은 길을 걷는 동반자로서 에너지클러스터 울진의 백년대계를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며 “지역의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고 이해를 구하는 진심 어린 소통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한울원자력본부는 신한울 1·2호기를 포함한 원전 운영과 신한울 후속 원전 건설사업이 진행되는 국내 핵심 원자력 사업장이다. 이에 따라 발전소 안전 운영뿐 아니라 신규 원전 건설, 지역 수용성 확보, 원전
공자니 맹자니 노자니 하면 휴대폰은커녕 신문이나 텔레비전, 자동차, 우주선, 컴퓨터 같은 문명 하나 없이 소가 끄는 수레나 타고 다니던,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관점과 인식이 21세기 인공지능(AI) 시대에 무슨 도움이 되겠냐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런 까닭에 한때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이 제목만으로도 너무 섹시해서 그런 사람들 사이를 꽤나 파고들었다. 물론 현대의 관점에서 비판의 요소가 없을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죽어야’ 할 정도일까? 삼천 년 전 대륙의 춘추전국시대는 눈만 뜨면 권력 투쟁과 전쟁으로 목숨은 백척간두에 붙어 있었고, 그때도 권세 있는 일자리는 적은데 차지하려는 사람은 많다 보니 출세 경쟁 또한 지금 못지않게 치열했다. 공자마저 뜻을 펴기 위해 여러 나라를 주유했지만 기대만큼 성공을 거두지 못한 채 고향에 돌아와 제자들을 양성하는 ‘사교육’밖에 할 수 없었던 것 아니었는가. 저런 문명의 이기 없이 생사가 엄혹했던 때 무탈한 사회생활의 도구는 무엇보다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 대화와 교류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지금보다 훨씬 사람들 간의 처세가 중요했을 그 시절에 지식인들을 위한 필독서가 『논어』였다면 그
세상이 참 많이 좋아졌다고들 말한다. 첨단 기술이 삶을 바꾸고, 'K-복지'의 화려한 구호가 연일 미디어를 장식한다. 하지만 그 화려한 수사 뒤편,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의 삶은 여전히 시커먼 절벽 앞에 서 있다. 대한민국에서 휠체어 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매 순간 자신의 존재가 거부당하고 지워지는 경험을 견뎌내는 일과 같다. 우리는 흔히 ‘복지’라는 말을 좋은 뜻으로 쓴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의 복지는 그 출발점부터 일그러져 있다. 우리 사회의 복지는 ‘함께 살아가는 동료 시민’을 전제하지 않는다. 그저 시혜를 베풀어야 할 대상, 집 안에 머물게 하고 돌봐야 할 ‘관리 대상’으로만 장애인을 바라본다.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자고 말은 번드르르하게 하면서도, 정작 구조적인 배제와 시혜적 시선만을 끊임없이 생산해 내는 것이 지금의 가혹한 현실이다. 이 일그러진 복지의 민낯이 가장 처절하게 드러나는 지점이 바로 ‘이동권’이다. 이동은 인간 존엄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전제 조건이다. 몸을 움직여 이동할 수 있어야 직장에 가고, 병원에 가고, 학교에 가고, 복지관에 가며 동료 시민들과 부대낄 수 있다. 이동이 막히면 삶 전체가 지워진다. 하지만 휠체어 장애인들
나는 일곱 살, 다섯 살 두 아이를 키우는 육아 대디다. 육아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는 터라 아이들이 하원하고 나면 놀이터 벤치에 앉아 부모들과도 자연스레 모인다. 곧 초등학교에 입학할 자녀를 둔 부모들의 대화는 늘 비슷하게 흘러간다. “거기 보낸 애들이 다 효과 봤다던데요.” “영어에 코딩까지 보내다 보니 교육비가 한 달에 백만 원이 훌쩍 넘어요.” “안 하면 우리 아이만 뒤처질 것 같잖아요.” 대화는 비슷하게 끝나지만 부모들의 표정은 닮아 있다. 불안과 죄책감이 함께 묻어난다. 저녁 여덟 시가 되면 단지 앞 도로에는 노란 학원버스가 줄지어 서고, 창밖으로 보이는 아이들은 졸린 눈을 비비며 다음 수업으로 향한다. 학원가 골목에는 밤 열한 시가 넘어도 건물 간판에 불이 꺼지지 않는다. 만 네 살, 다섯 살짜리를 위한 영재원 입학 대비 과정이 성업 중이고, 그 골목을 채운 아이들 중 상당수가 아직 초등학생이다. 언제부터였을까, 입시 경쟁이 고등학교를 넘어 초등학교로, 유치원으로, 급기야 만 네 살짜리 아이의 일상으로까지 스며든 것이. 우리 세대도 야간자율학습이라는 이름으로 밤 열한 시, 열두 시까지 교실에 붙잡혀 있었지만, 그것은 적어도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의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명예의 전당에는 건설업체 K사의 P회장 부조가 걸려 있다. 한양대 공대는 2020년 P회장에게 ‘자랑스러운 한양공대인상’을 수여하고, 국가 산업 발전과 나눔에 기여한 동문으로 기념했다. 문제는 P회장이 상을 받기 전 이미 강제추행 혐의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는 점이다. P회장은 2019년 서울고등법원에서 강제추행 혐의로 징역 1년 2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성폭력 치료강의 수강과 취업제한 명령도 함께 내려졌고 해당 판결은 확정됐다. 한양대 공대가 P회장을 ‘자랑스러운 동문’으로 선정한 시점은 그로부터 약 1년 뒤인 2020년 11월이다. 강제추행 유죄 전력이 있는 동문의 얼굴과 이름을 후배들이 오가는 공간에 명예의 상징으로 남긴 것이다. 한양대가 수상자 선정 과정에서 P회장의 형사처벌 전력을 확인했는지, 확인하고도 수상을 결정했는지, 범죄 전력을 심사 대상에서 제외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몰랐다면 검증 실패다. 알고도 상을 수여했다면 대학은 성범죄 유죄보다 기업인의 사회적 지위와 경영 성과를 더 높게 평가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명예의 전당은 단순한 동문 명단이 아니다. 대학이 학생과 사회를 향해 ‘이 사람의 삶과
아무리 법이나 제도를 잘 만들어도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이 유교의 가르침이다. 주자가 15~6세 때 보고 전율을 느꼈다고 회고한 『중용』 제20장의 내용은 그러한 유교의 가르침을 핵심적으로 전하고 있다. 유교 종단 성균관의 헌법이라고 할 『종헌』과 「재무회계규정」은 선배유림들의 피와 땀이 결집되어 각종 불법과 비리를 막을 수 있는 여러 규정을 두고 있었으나 이를 운용하는 자들의 불법과 비리로 인해 유명무실해져 결국 지금과 같은 재정적, 정신적 파탄에 이르고 말았다. 수천 년 유교의 가르침이 중앙을 장악한 몇몇 불순한 이들에 의해 순식간에 부정되며 파괴된 지금의 상황은 심산 김창숙 초대 성균관장을 비롯한 선배유림들과 공자를 비롯한 성현들께서 땅을 치며 통탄할 일임이 분명하다. 무엇이 잘못되고, 어디에서부터 문제였는지를 되돌아보기에는 헝클어지고, 잘못된 부분들이 너무 많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는 어려우나 가장 첫 번째 잘못은 최종수 성균관장과 김기세 총무처장 등의 현재 성균관 집행부가 『종헌』, 「재무회계규정」과 같은 유교 종단의 법률체계뿐만 아니라 『헌법』, 「국유재산법」과 같은 대한민국의 법률체계까지 무시하며 각종 위법·편법·불법·무법(無法)·
지난 수천 년간 한국전통문화를 만들고 이끌어왔던 유교 종단의 근본이자 사실상의 모든 존재인 전국 유림들이 전혀 알지 못한 상태에서 성균관이 지난 7월 2일 ‘2026년도 제2차 임시총회’ 직전에 기습적으로 개최한 제35대 성균관장 취임식은 대내외적으로 상당한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워낙 믿기지 않는 소식이다 보니 창간 57년의 역사를 가진 ‘유교 종단의 대표언론’인 본지에 정부 관계자를 비롯해 이웃종단, 정치권, 언론계, 사회지도층은 물론 평소 연락이 뜸하던 유림들마저 “그게 사실이냐?” “매번 몇백 명 이상의 유림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유명인사들이 참석하여 진행되던 관장 취임식을 왜 그렇게 졸속으로 진행한 것이냐?” “굳이 몰래 했어야 하는 이유라도 있었던 것이냐?” 등의 다양한 질문을 통해 성균관이 공개적으로 말하지 못하는 속사정을 알려는 연락이 계속됐다. 한국 유교 종단의 수장인 성균관장 취임식은 심산 김창숙 초대 성균관장 시절에는 국내 주요 언론에 톱뉴스로 실릴 정도로 주목받았고, 당연히 참석자들도 쟁쟁했으며, 이후에도 격변의 한국 현대사와 유림사회의 여러 사건들 와중에도 장관, 국회의원, 주요 정치인, 성균관대학교 이사장 및 총장, 전통문화 관계자,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단순한 불편을 감내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이동하고, 배우고, 일하고, 즐기는 일상적 행위조차 스스로 끊임없이 요청하고 증명해야 하는 현실과 마주하는 일이다. 비장애인에게는 공기처럼 당연한 권리들이 장애인에게는 여전히 ‘특별한 배려’로 취급된다. 이 차이는 단순한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장애인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구조적 문제다. 저상버스를 기다리며 운전기사와 승객들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정류장의 공기, 단 5cm의 턱을 넘지 못해 수 킬로미터를 돌아가야 하는 길 위의 고립감, 그리고 누군가의 선의 없이는 문턱조차 밟지 못하는 공공시설들. 이 모든 장면은 단순한 ‘불편’의 기록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여전히 장애인을 동등한 주권을 가진 ‘함께 살아가는 시민’으로 온전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명백한 증거다. 흔히 사람들은 장애 문제를 ‘복지’의 틀 안에서만 바라본다. 예산을 얼마나 배정했는지, 어떤 혜택을 주었는지에 집중한다. 그러나 이는 본질을 축소시키는 지극히 시혜적인 시선이다. 장애인의 삶은 누군가의 자비에 기대어 연명하는 대상이 아니라,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의 문제다. 경사로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