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지켜보다가 한마디에서 오래 눈길이 멈췄다. “저는 문과입니다.” 제넨셀의 코로나19 치료제 동물실험 자료 조작 의혹과 관련한 질의 과정에서 나온 답변이었다. 김 후보자는 자신이 문과 출신이어서 치료제의 성능이나 실험자료의 진위를 알 수 없었다는 취지로 말했다. 후보자 측은 이후 해당 발언이 책임을 회피하려는 뜻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의약품의 효능과 실험자료의 진위는 전문기관이 판단할 영역이며, 자신은 관련 분야의 전문성이 부족해 자료 조작 여부를 알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법률가에게 의사나 약학자 수준의 지식을 요구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 해명은 일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에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 질문이 남았다. 도대체 ‘문과’란 무엇인가? 오늘날 우리는 사람을 너무 쉽게 문과와 이과로 나눈다. 수학과 과학에 익숙하면 이과, 역사와 철학·법을 공부하면 문과라고 부른다. 이런 구분이 오랫동안 이어지면서 과학이나 의학, 기술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문과라서 모른다”는 말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전문 영역을 잘 알지 못한다는 솔직한 고백일 수 있지만, 때로는 더 알아보지 않아도 된다는 변명처럼 쓰이기도
쿠바 아바나 항의 늙은 어부는 84일 동안 별다른 고기를 낚지 못했다. 85일째 날 새벽 에너지가 돼줄 커피를 마신 후 바다로 나섰다. 평소처럼 도시락 대신 뱃전에 놓인 하루 마실 물병이 그가 먹을 전부였다. 먼 바다로 나간 노인은 먼저 다랑어 한 마리를 낚았다. 뒤이어 노인이 탄 배보다 큰 청새치가 걸려들었다. 그는 낚싯줄을 끊음으로써 자신의 힘으로 제어할 수 없는 청새치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대신 2박 3일 동안 먼저 잡았던 다랑어를 식량 삼아 청새치와 대결을 택했다. 3일째 되던 날 노인은 마침내 힘이 빠진 청새치를 끌고 귀항을 서둘렀다. 그러나 이때 피 냄새를 맡고 달려온 상어 두 마리가 배 주위를 돌며 청새치를 공격했다. 지친 노인은 청새치를 지키기 위해 또다시 상어와 최후의 사투를 벌여야 했다. 노인은 그날 밤늦게서야 항구로 돌아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소년 마놀린이 끌어올린 낚시에는 상어에게 뜯겨서 머리와 뼈만 남은 청새치가 남아 있었다. 헤밍웨이 소설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산티아고는 노인인가, 청년인가? 그는 노인이 아니라 ‘나이 든 청년’이다. 젖 먹던 힘까지 짜내 노를 들어 상어를 내리치며 그는 소리쳤다. “인간은 패배하도록 만들
우리 민족의 대표 명절 추석이 1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예전 같은 분위기는 아니지만 현재의 나와 우리가 있도록 보살펴주신 조상의 음덕에 감사하고, 세상을 떠난 어른들에게 고마움의 마음을 전하는 시간이자 부모님, 형제·자매, 친구, 이웃, 지인 등 반가운 얼굴을 볼 수 있는 소중한 때이다. 이들을 통해 지나간 추억을 회상하고, 지금의 삶을 격려하며, 앞으로의 미래를 그려나가는 한편으로, 견디기 힘들었던 무더운 여름을 지나오며 지친 몸과 마음에 숨 쉴 틈과 휴식의 여유를 전하여 다시 한번 뛸 수 있는 에너지를 만드는 시기이니 설렌다는 표현이 딱 맞을 듯하다. 이런 즈음이 되면 주요 정치인들은 “5천만 국민들께서 즐거운 명절 보내시길 기원한다”라고 하거나 때로는 북한 및 재외동포까지 포함하여 “7천만 겨레의 안녕을 염원한다” “8천만 한국인 모두의 가슴에 행복이 전해지길 바란다” 등의 표현으로 한국인의 대표 지도자처럼 발언한다. 하지만 정치인의 거짓말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 된 지 오래이고, 비판받는 정치인이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는 경우에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직위를 내놓거나 더 이상 정치활동을 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하여 ‘꼴 보기 싫은 얼굴을 사라지게 하는
필자는 사람의 향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용인중앙시장에 자주 간다. 골목마다 배어 있는 투박한 사람 사는 냄새, 눈이 마주치면 건네오는 정겨운 인사, 그리고 주름진 손으로 건네받는 물건 속에서 메마른 현대 사회가 잊고 지낸 사람에 대한 온기와 향수를 느끼기 때문이다. 용인중앙시장은 전국의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5대 시장이다. 하지만 며칠 전 방문에서 여기저기 내걸린 ‘임대 문의’ 현수막과 셔터가 내려진 빈 점포들을 바라보며, 활기를 잃고 쇠퇴해가는 모습에 문득 ‘이 정겨운 시장도 속절없이 늙어가는구나’ 하는 서글픔이 밀려왔다. 하지만 시장의 침체는 단순히 세월의 무게나 대형 마트의 등장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 시장 상인회의 자성 부족과 행정 관청의 무신경한 탁상행정이 빚어낸 합작품에 가깝다. 신뢰는 쌓기는 어려워도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인데, 지금 중앙시장은 스스로 그 신뢰를 갉아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첫째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은 지지부진한 ‘도시재생’이다. 중앙동과 용인중앙시장 일대 도시재생 사업에 600억 원이 넘는 막대한 혈세가 투입된다는 대대적인 홍보를 들은 지 벌써 수년의 세월이 흘렀다. 예산은 이미 상당 부분 소진되었
키아프·프리즈 서울 기간, 삼청나잇을 맞아 갤러리현대에서 김보희 작가의 개인전 《TOWARDS: There Was Light》을 보았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먼저 화면의 크기와 깊이에 마음이 갔다. 40여 년 동안 자연을 바라보고 그 시간을 회화 안에 축적해온 작가의 작업이었다. 한국화의 전통적 재료와 조형 감각에서 출발했지만, 그것을 캔버스와 대형 화면, 현대적인 회화의 언어로 확장해온 궤적이 인상적이었다. 이번 전시에는 대규모 회화 〈The Days〉를 비롯해 제주 정원과 바다, 꽃과 열매 등 오랫동안 바라본 자연을 담은 작품들이 펼쳐져 있었다. 마침 나 역시 최근 동양화의 재료와 기법을 지금의 내 회화 안에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실험하고 있던 참이었다. 서양화의 캔버스 위에 동양의 시간성과 여백, 스며듦과 중첩의 감각을 어떻게 만날 수 있게 할 것인가. 그래서였는지 김보희 작가의 화면 앞에서 조금 더 오래 머물게 되었다. 특히 전시 제목인 ‘TOWARDS’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오랫동안 내 작업을 ‘Eternal Becoming’, 영원한 되어감이라는 말로 설명해왔다. ‘Becoming’이 어떤 완결된 상태가 아니라 계속 생성되고 변화하는
지난 글의 마지막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신분으로서의 양반은 사라져 갔는데, 왜 양반이 향유하던 족보문화는 오히려 사회 전체로 확산되었을까?” 사람들은 양반이 되기 위해 족보 안으로 들어가고자 했지만, 더 많은 사람이 족보에 참여하면서 족보는 더 이상 양반만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이 역설은 한국 족보의 역사를 넘어 한국 사회의 문화변동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신분으로서의 양반은 사라졌지만, 문화로서의 양반은 어떻게 되었을까? 특권의 철폐, 그리고 특권의 보편화 근대로 접어들면서 신분제가 해체되고 양반이라는 신분이 가졌던 제도적 특권은 사라져 갔다. 그러나 양반층이 오랫동안 향유했던 문화까지 함께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흥미로운 일이 일어났다. 과거 일부 계층이 주로 향유하던 문화 가운데 상당 부분은 신분제가 사라진 뒤에도 소멸하지 않고 사회 전체로 확산되었다. 교육이 가장 분명한 사례다. 글을 배우고 책을 읽으며 학문을 익힐 기회가 한때 일부 계층에 집중되어 있었다면, 오늘날 교육은 누구나 누려야 할 보편적인 권리가 되었다. 과거 소수에게 집중되었던 지식과 교육의 기회가 더 많은 사람에게 열린 것이다. 복식도 그렇다. 신분에 따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은 족보 안으로 들어가고자 했을까?” 족보는 사람의 계보를 기록한 책이다. 누가 어느 가문에 속하는가, 누구의 후손인가, 어느 파에 속하는가를 밝히고 그 구성원의 계보적 위치를 확인한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족보는 단순히 조상의 이름을 적어놓은 책만은 아니었다. 족보에 이름이 기록된다는 것은 특정 가문의 구성원으로 인정받는다는 의미였으며, 그 가문이 형성한 사회적 관계와 문화적 권위 속에 자신과 후손이 위치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따라서 족보에는 자연스럽게 안과 밖이 있었다. 누가 족보에 들어갈 수 있는가, 누가 어느 선조의 정당한 후손인가, 어디까지 같은 문중의 구성원으로 인정할 것인가가 중요했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 전기와 중기의 족보는 상당 부분 사람을 가르고 경계를 확인하는 ‘구별의 기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족보의 문을 둘러싼 진입과 저항 그런데 조선 후기로 가면서 흥미로운 변화가 나타난다. 족보 밖에 있던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안으로 들어가고자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이러한 현상은 주로 비양반층의 양반지향이나 신분상승 욕구,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타난 모록(冒錄)과 위보(僞譜)의 문제로 설명되어 왔다. 충분한 역사적 근
얼마 전, 성남시의 한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종사자의 폭행으로 장애당사자가 안타깝게 목숨을 잃는 참극이 발생했다. 필자는 이를 규탄하는 결의대회 현장, 그리고 용인시정연구원에서 열린 ‘무장애 관광도시 조성 세미나’에 함께 참여하며 우리 사회 지도층의 일천한 장애인식에 깊은 탄식을 금할 수 없었다. 세상이 변했다, 변한다 입을 모아 말하지만, 왜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할 약자들과 함께하는 사회의 가치 철학은 제자리걸음인지 뼈아프게 절감한 순간들이었다. 폭행 사망 사건을 규탄하는 자리에 참석한 한 시의원은 연대 발언을 빙자해 여전히 시혜와 동정 어린 시선을 거두지 않았고, 장애인의 자립생활에 대한 무지와 회의적인 태도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무장애 관광 세미나의 상황은 더 참담했다. 미래 세대를 가르치는 한 대학교수는 “여행이란 모름지기 역경과 고난을 겪어야 제맛이 아니냐”는 식의 망언을 던졌다. 무장애를 외치고 편의시설 확충을 외치는 것이 여행의 본질을 해친다는 취지로 이해되고 오해할 수 있는 이 발언은 충격을 넘어 참담함을 안겨주었다. 구시대적 발상에 갇혀 차별을 당연시하는 지도층 인사들에게 묻고 싶다. 장애인이라고 해서 늘 안온하고 편의시설이 완비된 곳만 찾아다
사회복지 현장은 늘 “사람이 사람을 살리는 곳”이라 불린다. 그러나 오늘날 복지시설과 현장의 실핏줄 역할을 하는 사회복지사들이 처한 현실은 과연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인가. 헌신과 묵묵한 노고로 복지 사각지대를 메워 온 현장의 복지사들이 감내해 온 아픔과 한계는 이제 단순한 직업적 스트레스의 수준을 넘어섰다. ‘감정노동’과 ‘행정 폭탄’ 사이, 무너지는 현장 현장 사회복지사들이 마주하는 가장 큰 어려움은 안전의 부재와 과중한 업무량이다. 위험에 노출된 이용자나 악성 민원인으로부터 폭언, 폭행, 모욕을 당하는 일이 빈번함에도 현장에는 이들을 보호할 실질적인 방화벽이 부족하다. 헌신이라는 미명 아래 위험조차 개인이 참아내야 하는 구조가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과도한 행정 절차와 보조금 집행 관련 서류 작업은 복지사의 본래 임무인 ‘이용자 중심의 밀착 서비스’를 가로막는다. 사람을 마주하고 상담하며 온기를 나누어야 할 시간에 평가 대비용 서류를 작성하느라 밤을 지새우는 기형적인 구조는 복지사들에게 극심한 번아웃과 자괴감을 안겨준다. 여기에 기관장의 폭행이나 언어폭력 등까지 더해진다면 사회복지사가 감당해야 할 고통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태권도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무예이자 세계인이 함께 수련하는 문화 자산이다. 세계 곳곳의 도장에는 태극기가 걸리고, 수련생들은 우리말 구령에 맞춰 품새와 겨루기를 익힌다.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세계에 알린 가장 강력한 문화 자산 가운데 하나다. 전북 무주에 조성된 태권도원은 단순한 체육시설이나 관광단지가 아니다. 경기와 수련, 연구, 교육, 교류 기능을 갖춘 세계 유일의 태권도 복합공간이자 국가가 만든 ‘세계 태권도의 성지’다. 태권도진흥재단도 「태권도 진흥 및 태권도공원 조성 등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설립된 공공기관이다. 태권도원의 효율적인 관리·운영과 태권도의 발전, 국제적 위상 제고가 재단에 주어진 법정 임무다. 태권도의 조사·연구와 보존·보급, 국내외 진흥사업도 수행한다. 그렇기에 태권도원을 운영하는 사람과 조직에는 더욱 엄격한 공정성과 책임이 요구된다. 태권도가 가르치는 절제와 예의, 원칙은 경기장 안에서만 지켜야 할 덕목이 아니다. 사람을 임명하고 조직을 운영하는 과정에서도 그대로 적용돼야 한다. 지난해 태권도원 노동조합은 당시 서모 대표이사의 인사·노무관리에 문제가 있다며 총파업에 나섰다. 특정 직원과 다른 직원들의 임금 인상률 차이, 채용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