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 일은 전국의 지방의회를 찾아다니며 의원들을 마주하는 것이다. 강의장에서 만나는 표정은 제각각이다. 당선의 기쁨이 아직 가시지 않은 이들도 있지만, 유독 눈에 밟히는 이들은 걱정 가득한 초선 의원들이다. 자신을 뽑아준 시민을 실망시키지 않을까, 4년 뒤 지역을 조금이라도 바꿔놓을 수 있을까 두려워하는 얼굴들이다. 쉬는 시간이 되면 내게 다가와 속내를 털어놓곤 한다.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당선된 날부터 매일 두렵습니다." 그 질문을 들으면 나는 도리어 마음이 놓인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사람만 그런 걱정을 하니까.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내고 두려워할 줄 아는 태도, 그게 곧 정치인의 간절함이자 성장의 출발점이다. 질문을 품고 왔다가 답을 찾고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는 의원들을 볼 때마다 실감한다. 정치에도 배움의 표정이 있구나. 사실 지방의원에게는 자격증이 없다. 의사나 변호사는 엄격한 수습 과정을 거치고, 공무원도 임용과 교육을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수천억, 수조 원의 예산을 심의하고 주민의 삶을 바꾸는 조례를 만드는 지방의원은 선거가 끝나는 순간 선출된 권력이 된다. 물론 민주주의에서 시민의 선택보다 더 큰 자격은 없다. 다만 당선은 자격의
장애인에게 있어 최대의 복지는 무엇일까? 단언컨대 그것은 ‘일자리’다. 노동은 단순히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을 넘어, 한 인간이 사회적 주체로서 자신의 존엄성을 증명하고 자아를 실현하는 가장 완벽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최근 이러한 시대적 요구와 니즈를 반영하듯 지자체와 정부 차원에서 장애인 일자리가 양적으로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단시간 복지 일자리부터 전일제, 체육 및 문화예술 일자리, 그리고 중증장애인을 위한 권리중심형 일자리와 재택근무 모니터링 일자리까지 겉보기에는 제법 다채로운 진용을 갖춘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 장애인들의 삶은 일자리와 함께 윤택해 지고 풍성해 졌을까? 그러나 화려한 포장지를 한 꺼풀만 벗겨내면 차마 양질이라 부르기 민망한 차가운 현실이 드러난다. 현재 양산되는 장애인 일자리의 절대다수는 단시간 근로이거나 반일제 근무에 불과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과거 장애 당사자들이 비장애인 중심의 거친 기업 환경 속에서도 치열하게 경쟁하며 당당히 꿰찼던 ‘8시간 전일제 근무’의 양질의 일자리들이 오히려 눈에 띄게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중증장애인을 위한 맞춤형 단시간 일자리가 필요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중증장애인 지원 확대를 빌
지방에서 조그만 펜션을 운영하는 지인이 엊그제 펜션 시작 이래 최악의 불경기라며 하소연을 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잦은 만실에 7, 8월 한여름에는 방이 없어 예약을 못 받았는데 올해는 빈방이 더 많다며 걱정이 태산이었다. 동네 단골 정육점 사장도 올해 손님이 눈에 띄게 줄어 폐업을 심각하게 고려 중이라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아닌 게 아니라 동네 주변을 돌다 보면 닫힌 문에 ‘임대’를 내건 가게가 예전보다 많이 보인다. 동네 장사가 안 된다는 말은 곧 돈을 써야 할 이웃 역시 지갑이 비었다는 말이다. 매스컴에서는 날이면 날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도체로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여 직원들에게 수억 원씩 보너스를 뿌린다고 호들갑인데 그저 먼 동네 잔치일 뿐 내 통장에는 신사임당은커녕 세종대왕 한 장 보내주지 않는다. 주가가 단군 이래 최대로 오른다며 6.25 난리는 난리도 아닌 터라 가만히 있으면 나만 바보 되나 싶어 없는 돈 끌어모아 주식에다 걸었는데, 레버리지라는 이상한 놈 때문에 주식 시장이 경마장보다 예측이 어려운 돈 놓고 돈 먹기 도박장이 돼버려, 거름 지고 장에 따라갔던 서민과 취업난으로 허덕이는 청년들만 쌍코피를 흘린다. 주가가 치솟을 때는
13년 5개월 동안 대한축구협회를 이끌다 지난 6일 물러난 정몽규 전 회장이 30일 다시 여의도를 찾았다. 이번에 그가 앉은 자리는 축구협회장석이 아니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청문회의 증인석이었다. 국민적 신뢰를 잃은 축구협회의 운영 난맥과 감독 선임 과정의 공정성, 북중미 월드컵 부진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정 전 회장은 모두발언에서 고개를 숙였다. 재임 기간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노력했으나 일련의 논란과 북중미 월드컵의 미흡한 결과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축구협회장으로서 책임감을 통감한다는 말도 뒤따랐다. 사과의 끝에는 작별 인사가 놓였다. 회장직에서 물러난 만큼 앞으로는 기업인으로서 경영에 집중하며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것이었다. 오랜 기간 축구협회를 이끌며 누적된 문제를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지 설명하기보다, 이제는 기업인의 자리로 돌아가겠다는 선언처럼 들렸다. 책임을 말하면서도 책임을 져야 할 자리는 이미 떠났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웠다. 질의가 시작되자 사과의 실질은 더욱 흐릿해졌다.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팀이 월드컵 16강에 진출했더라도 청문회가 열렸겠느냐?"고 묻자, 정 전 회장은 "16강에 올랐다면 청
옛 성현은 “이로움을 보거든 의로움을 생각하라(見利思義)”고 가르쳤다. 이익과 의로움의 경계를 분별하는 의리지변(義利之辨)은 유가가 수천 년 동안 강조해 온 오래된 경계다. 이익 자체를 죄로 여긴 것이 아니라, 이익을 좇더라도 마땅함을 잊지 말고 그 과정에서 이웃과 공동체의 삶을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홈플러스 사태로 대주주 책임론에 직면한 MBK파트너스가 고려아연과 같은 국가기간산업의 경영권까지 확보하려는 상황을 지켜보며 이 오래된 가르침을 다시 꺼내지 않을 수 없다. 사모펀드의 투자와 경영권 행사가 노동자의 고용과 협력업체의 존립, 지역경제의 안정, 국가 핵심소재 공급망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를 단순한 사적 거래로만 바라볼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29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사모펀드가 국가기간산업과 공공·민생산업의 경영권을 제한 없이 인수하지 못하도록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됐다. 강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모펀드가 국가기간산업과 공공산업, 민생산업의 경영권을 침탈하면 결국 홈플러스 같은 사태가 반복될 수 있다”며 규제 장치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절차를 밟는 상황에서 MBK가 미국
퇴계 이황, 율곡 이이를 비롯한 유교 성현들께서 수없이 읽고, 아마도 기억 속에 모두 담았을 유교 경전의 내용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거의 그대로 적용되는 부분이 한둘이 아니다. 그 중에서도 『주역』 「곤괘(坤卦)」 문언전(文言傳)의 ‘선을 쌓은 집안은 반드시 남은 경사가 있고, 불선을 쌓은 집안은 반드시 남은 재앙이 있다(積善之家 必有餘慶, 積不善之家 必有餘殃)’라는 문구는 세상을 더 많이 살며 갖가지 일을 겪은 어른이나 선배들이 철 모르고 경거망동하는 젊은이와 후배들에게 말이나 글로 직접 알려줄 정도로 유명하다. 여기서는 ‘남은(餘)’의 의미가 중요한데 지금의 행동 하나하나는 당장의 결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흘러 자손과 후손들에게도 여파가 미칠 정도로 중요하고, 따라서 거짓과 악에 대한 유혹에서 벗어나 진실과 선을 추구해 가는 것이 인간의 길임을 강조한다. 지난 역사 속에서 우리들은 정당하고, 자신있는 권력일수록 모든 것을 드러내고, 서로 의논하며, 때로는 더디더라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해왔음과 부당하고, 자신없는 권력일수록 모든 것을 숨기고, 극소수만 논의하여 결정하며,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속전속결 형태의 일
스타벅스는 단순한 커피 전문점이 아니다. 전 세계 어디서나 같은 품질과 서비스를 제공하며 '제3의 공간(Third Place)'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집과 직장 사이에서 누구나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지향해 왔다.국내 스타벅스 역시 이러한 철학을 앞세워 "모두에게 열린 공간"을 강조하고 있으며, 1999년 이대점 1호점을 시작으로 2025년 말 기준 전국 2115개 매장을 운영하는 세계 3위 규모 시장으로 성장했다. 신세계그룹 역시 스타벅스를 단순히 커피를 판매하는 공간이 아니라 고객의 일상과 문화를 담는 생활 플랫폼으로 성장시키겠다는 방향을 꾸준히 제시해 왔다. 실제 스타벅스는 커뮤니티 스토어 운영, 장애인 바리스타 채용 확대, 친환경 캠페인, 지역사회 공헌 활동 등을 통해 ESG와 포용 경영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장애인의 눈으로 바라본 스타벅스는 과연 "모두에게 열린 공간"일까? 스타벅스 현실은 기업이 내세우는 철학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 전국 수천 개의 스타벅스 매장 가운데 상당수는 장애인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 화장실이 아예 없는 곳도 있고, 설치되어 있더라도 휠체어가 회전할 공
사건과 사고는 어느 기업에서든 발생할 수 있다. 분쟁도 마찬가지다. 거대한 사업을 벌이고 수많은 협력업체와 거래하는 기업이라면 모든 위험을 완전히 피하기는 어렵다. 기업의 진면목은 일이 벌어진 다음에 드러난다. 잘못된 부분을 인정하고 사실을 투명하게 밝히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책임의 범위를 좁히고 침묵으로 시간을 버는 기업도 있다. 지금 포스코에 필요한 것은 사건이 없었다는 항변이 아니라, 사건이 벌어진 뒤 무엇을 알고 있었고 어떻게 대응했는지에 대한 솔직한 설명이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샌다는 말이 있다. 포스코의 아르헨티나 리튬 사업 관련 소식을 취재하는 동안 이 오래된 속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르헨티나 살타주 법원은 포스코 현지 리튬 사업법인 명의의 은행 계좌에 가압류 결정을 내렸다. 리튬 프로젝트 기반시설 공사를 맡았던 현지 업체가 공사대금을 지급받지 못했다며 제기한 청구에서 비롯된 조치다. 포스코홀딩스는 가압류 대상이 지주사 계좌가 아닌 현지 자회사 계좌이며, 실제 동결된 금액도 일부 국내 보도에서 언급된 수백만 달러가 아니라 약 30만 달러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계좌 명의와 금액에 관한 회사의 정정은 받아들일 부분이다. 사실관
용인특례시의회 자치행정위원회가 지난 23일 제305회 임시회 제1차 회의에서 총사업비 985억 원 규모의 ‘용인 반다비 체육센터 건립’ 공유재산 관리계획안을 부결시켰다. 같은 사업이 의회 문턱을 넘지 못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위원회는 오전 질의·답변을 진행한 뒤 낮 12시 1분 정회했고, 오후 3시 40분 회의를 속개해 토론을 거친 뒤 무기명 투표에 들어갔다. 결과는 출석위원 8명 가운데 찬성 4표, 반대 3표, 기권 1표였다. 찬성이 반대보다 한 표 많았지만 출석위원 과반인 5표를 얻지 못해 안건은 부결됐다. 본지가 지역에서 확인한 결과, 국민의힘 소속 위원 4명은 모두 찬성표를 던졌다. 또한, 더불어민주당 소속 위원 가운데 3명은 반대표를, 신 위원장은 기권표를 던진 것으로 알려졌다. 표는 정당 구도에 따라 정확히 갈렸다. 국민의힘은 네 표를 확보하고도 사업을 통과시키지 못했고, 민주당은 반대 3표와 기권 1표로 결과적으로 안건을 막았다. ‘4·3·1’은 단순한 개표 숫자가 아니다. 985억 원 규모의 사업을 세 번째로 심사하면서도 계획을 보완하지 못하고, 자신의 선택을 시민 앞에 공개하지 않은 용인특례시의회의 정치력과 책임 의식을 그대로 드러낸 숫
“임금이 신하를 손발처럼 여기면 신하는 임금을 심복으로 여기고, 개나 말처럼 여기면 길 가는 사람으로 여기며, 흙이나 지푸라기처럼 여기면 원수로 여긴다” 君之視臣如手足, 則臣視君如腹心 君之視臣如犬馬, 則臣視君如國人 君之視臣如土芥, 則臣視君如寇讎 — 『孟子』 「離婁下」 트로피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K씨는 최근 몇 년 동안 전국 영업실적 1위를 세 차례 기록했다. 전국 상위권 포상 대상에도 여러 차례 이름을 올렸다. 주말이면 거래처를 찾았고, 가족과 보내야 할 시간을 회사의 실적으로 바꿨다. 그는 회사가 언젠가 자신의 성실함을 기억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성과는 숫자로 남고, 숫자는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회사는 성과가 좋은 직원을 ‘자산’이라고 부른다. 직원도 그 말을 믿으며 자신의 젊음과 시간, 가족의 기다림을 회사에 맡긴다. 열심히 일하면 실적으로 보답받고, 어려움에 처하면 조직이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이다. K씨 역시 그렇게 15년을 일했다. 그 믿음이 무너진 것은 지난해 9월이었다 한 직원의 건강기능식품 온라인 불법유통 문제가 불거지는 과정에서 K씨가 공범으로 거론됐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당사자는 K씨와의 통화에서 자신이 단독으로 한 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