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홍성의 홍주향교는 성현을 모시고 지역의 인재를 길러온 유교문화의 터전이다. 향교는 공자와 선현에게 제사를 올리는 공간이자, 유생들이 학문을 익히고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배우던 교육기관이었다. 지역민에게는 예절과 공동체의 질서를 함께 나누는 장소이기도 했다. 홍주향교를 이야기할 때 잊지 말아야 할 이들이 있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 당시 향교와 문묘를 지키려다 목숨을 잃은 일곱 유생, 칠의사(七義士)다. 오경근·최민지·방세응·방석규·이준복·서종득·최학신이 그들이다. 이들은 향교에서 공부하던 재생(齋生)이었다. 재생은 향교에 머물며 학문을 닦던 유생을 뜻한다. 이들에게 향교는 공부하는 건물을 넘어 성현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는 삶의 터전이었다. 1894년은 조선 사회가 격변하던 때였다. 탐관오리의 수탈과 외세의 침략에 맞선 동학농민운동이 확산하면서 홍주 지역도 충돌을 피하지 못했다. 칠의사의 희생 역시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살펴야 한다. 향교에 전하는 칠의사의 이야기는 성현을 모신 문묘를 지키겠다는 결의에서 출발한다. 이들은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향교를 떠나지 않았고, 끝내 목숨을 잃었다. 후대 유림은 그 선택을 의로운 도리를 지키다 순절한
청년에게 창업을 권하는 정부는 공공조달을 새로운 판로로 제시한다. 첫 거래처를 찾기 어려운 기업에 공공기관의 계약은 사업을 이어갈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청년 창업기업이 입찰 공고를 읽다가 마주하는 질문은 아이디어가 얼마나 좋은지가 아니다. 해당 제품이나 서비스를 ‘직접 생산’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다. 직접생산확인제도에는 이유가 있다. 다른 회사가 만든 제품을 사서 납품하는 업체를 걸러내고, 실제 생산하는 중소기업에 계약 기회를 주려는 것이다. 청년 창업기업도 그 취지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문제는 직접생산 능력을 확인하는 방식이 새로 생긴 기업의 일하는 방식까지 제대로 담아내느냐다. 창업 초기의 청년 기업은 적은 인원으로 시작한다. 기획과 개발의 핵심을 맡으면서 다른 분야는 협업하기도 한다. 정보기술, 디자인, 콘텐츠가 결합된 용역이라면 업무를 칼로 자르듯 품목별로 나누기도 쉽지 않다. 이 기업에 필요한 질문은 사무실에 모든 인력과 장비를 갖췄느냐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계약에서 맡은 핵심 업무를 스스로 수행할 능력이 있는지 살펴야 한다. 물론 모든 공공조달 입찰에 직접생산확인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품목마다 기준이 다르고, 일부 서비스
내 돈을 갚을 능력이 충분하고 내 집을 사겠다는데, 국가가 "당신의 대출 한도는 여기까지"라며 빗장을 지른다. 정부의 주택담보대출 규제(LTV·DSR 등) 현장에서 흔히 목격되는 풍경이다. 시장의 자율성과 개인의 자산 형성 권리보다 정책적 목적을 우선시하는 이러한 개입은, 개인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논란을 끊임없이 낳아왔다. 그런데 이와 완벽히 닮은꼴의 강제적 통제가 우리 삶의 가장 기본 영역인 '일할 권리'에서도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 바로 '주 52시간 근로시간 상한제'다. 민법과 상법을 관통하는 법치주의의 뼈대는 '사적 자치의 원칙'과 '계약의 자유'다. 당사자가 자율적인 의사 결정을 통해 계약을 맺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는 구조는 대한민국을 세운 자유민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틀이다. 자산 형성을 위해 더 많은 소득을 원하거나, 자신의 직업적 성취를 위해 주당 52시간 이상 몰입해서 일하고 싶어 하는 근로자가 있고, 이에 정당한 대가를 지급할 용의가 있는 기업이 있다면 이들의 자발적 계약은 원칙적으로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현행 주 52시간제는 개인의 사정과 선택권을 무시한 채 국가가 일률적인 상한선을 그어놓았다. 이는 "너의 건강과 자산을 보호해
1970년대 미국 주요 교향악단에는 작은 혁명이 일어났다. 심사위원과 연주자 사이에 두꺼운 커튼을 치고 채점을 진행하는 ‘블라인드 오디션’이 도입된 것이다. 심지어 연주자가 걸어 들어오는 구두 소리로 성별을 짐작하지 못하도록 무대 바닥에 카페트까지 깔았다. 결과는 놀라웠다. 외모나 성별, 기존의 명성에 가려졌던 실력파 신진 연주자들이 대거 발탁되었고, 악단의 연주 수준은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오롯이 ‘소리’라는 본질에만 집중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공공 용역을 발주하고 평가하는 조달청 입찰 현장에도 이 두꺼운 커튼이 필요하다. 오랜 기간 국가 용역을 수행하며 법적·제도적 메커니즘을 관찰해 온 필자의 시선에서 볼 때, 입찰 평가에 이 커튼을 가장 완벽하게 치는 방법은 paradoxically 대면 평가가 아닌 '서면 평가'다. 공공 입찰에서 대면 평가(발표 평가)는 제안서 너머의 진짜 역량을 검증하는 장치로 선호되어 왔다. 그러나 현장의 실상은 오케스트라의 커튼을 치워버린 것과 같다. 발표자의 외모나 세련된 수사학, 당당한 태도는 제안서의 부실함을 덮는 '후광 효과(Halo Effect)'를 만들어낸다. 더 심각한 것은 법적 공정성의 균열이다. 발표장에 들
정부가 임시공휴일을 지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황금연휴’에 대한 기대가 먼저 쏟아진다. 해외여행 항공권을 알아보고 가족 나들이를 계획하는 모습도 되풀이된다. 쉬는 날이 늘어나는 것을 마다할 사람은 많지 않다.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몸과 마음을 회복할 기회가 생긴다는 점에서 임시공휴일의 의미도 분명하다. 문제는 국가가 정한 하루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휴일이 되지는 않는다는 데 있다. 사무직 노동자에게 임시공휴일은 달력에 표시된 온전한 휴일이 될 수 있다. 반면 식당과 편의점, 배달, 돌봄, 경비, 운수업 등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평소보다 더 바쁜 하루가 되기도 한다. 일한 만큼 정당한 수당이나 대체휴일을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에게 임시공휴일은 ‘남들이 쉬는 모습을 지켜보며 일하는 날’에 가깝다. 사업장을 비우기 어려운 영세 자영업자에게도 휴일은 휴식이 아니라 선택하기 어려운 영업 판단이 된다. 누군가의 연휴를 가능하게 하려면 다른 누군가는 교통수단을 운행하고 음식을 만들며 매장을 지켜야 한다. 휴일의 혜택은 널리 홍보되지만 그 휴일을 떠받치는 노동과 비용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임시공휴일을 내수 활성화 수단으로 보는 시각도 점검할
대한민국 공공조달 시장에서 '여성기업'에 대한 수의계약 제도는 수수께끼 같은 존재다. 표면적으로는 젠더 격차 완화와 약자 보호라는 명분을 내걸고 있지만, 현장의 실상은 "과연 이 제도가 진정한 여성 기업가를 육성하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게 만든다. 공공용역 및 조달 시장의 최전선에서 경쟁해 온 홍보대행사 대표로서, 나는 이제 이 제도의 시효가 다했음을 고백하고 '여성기업 수의계약 제도의 폐지'를 강력히 주장하고자 한다. 첫째, 명의만 빌려 쓰는 '바지사장'과 편법의 온상이 되었다. 현재 여성기업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여성기업은 공공기관 수의계약 시 추정가격 5,000만 원 이하(일반 기업은 2,000만 원 이하)까지 특혜를 받는다. 문제는 이 금액적 이점을 노리고 실질적 경영권은 남성 배우자나 친인척이 행사하면서 대표자 명의만 여성으로 등록하는 이른바 '위장 여성기업'이 판을 친다는 점이다. 이는 공정한 경쟁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실력으로 승부하려는 진짜 여성 기업가들에게까지 불신의 그늘을 드리운다. 둘째, 여성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피터팬 증후군'과 소기업 안주를 부추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 제도가 여성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
“밖으로 나가는 문턱 하나를 넘지 못해 하루 24시간을 방 안에서만 보냅니다. 나에게 집은 휴식처가 아니라 갇혀 있는 감옥입니다” 장애인 당사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런 말을 어렵지 않게 접하게 된다. 현관 앞 작은 문턱 하나, 휠체어가 들어가지 않는 화장실 문, 손이 닿지 않는 수도꼭지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하루의 삶 전체를 가로막는 장벽이 된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다. 집 안에 장애인 편의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면 일상은 편안한 휴식이 아니라 매 순간 몸과 씨름해야 하는 전쟁에 가까울 것이다. 장애인에게 ‘집’이 갖는 의미는 비장애인이 생각하는 것과 다를 수밖에 없다. 비장애인에게 집은 하루를 마치고 돌아와 쉬는 공간이지만, 이동에 제약이 있는 장애인에게 구조가 맞지 않는 집은 사회와의 연결을 끊는 또 하나의 장벽이 될 수 있다. 특히 오래된 단독주택이나 빌라, 반지하주택에서는 좁은 출입구와 높은 문턱, 미끄러운 화장실 바닥, 휠체어 회전이 어려운 공간 등이 일상의 위험으로 이어진다. 경기도에는 약 58만 명의 등록장애인이 거주하고 있다. 전국에서 장애인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인 만큼 주거환경 개선 역시 단순한 복지사업이 아니라 삶의 안전과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8월 7일 청와대에서 부동산 정책 점검 2차 비공개 회의를 주재하고, 2022년 이후 이어진 주택공급 부진을 ‘공급 절벽’으로 규정하며 기존 수도권 공급대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라고 주문했다. 정부가 제시한 방향은 공급계획의 숫자를 늘리는 데 머물지 않는다. 계획된 물량이 실제 착공으로 이어지고, 다시 준공과 입주까지 연결되는 기간을 줄여야 한다는 것으로, 결국 공급대책의 성패는 발표된 물량이 얼마나 신속하게 현장의 공사로 전환되느냐에 달려 있다. 건설 현장이 마주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금융권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잔액은 2023년 말 135조 원대에서 2026년 1분기 115조 5,000억 원까지 감소했고, 현장에서는 “수주를 해도 돈이 없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공급계획을 마련하더라도 사업을 뒷받침할 자금이 원활하게 돌지 않으면 첫 삽을 뜨기 어려운 상황이다. 여기에 토지보상과 영업보상, 이주대책을 둘러싼 법적 분쟁까지 겹치면서 사업 일정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정부가 토지보상·영업보상 관련 인력을 2배로 늘리겠다고 밝힌 것도 이러한 현장의 병목을 줄이기 위한 조치로 볼 수 있다. 인력 확충은 분명 필요하지만,
보편적 복지의 화려한 구호 뒤에서 우리 사회의 가장 미약한 존재들이 눈물 흘리고 있다. 최근 경기도가 포퓰리즘식 보편 복지 정책의 여파와 심각한 세수 부족으로 재정 파탄 위기에 직면하면서, 당장 생존을 위협받는 취약계층의 복지 예산부터 삭감이 우려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사회적 약자를 우선적으로 보듬어야 할 복지의 본래 기능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경기도의 재정 결손 상태는 이미 경고등을 넘어 심각한 위기 수준에 도달했다. 2025년 말 민선 8기 김동연 지사는 2026년 예산을 수립하면서 경기도가 가장 먼저 돌아보고 챙겨야 할 최약자들의 복지 예산 2,500억 원을 대폭 삭감하여 사회적 약자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히기도 했다. 이어 민선 9기로 당선된 추미애 경기도지사는 약자들을 위한 2026년 예산이 8개월분밖에 편성되지 않아 추경을 해야 함에도, 재정 결손으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며 은근히 약자 복지 예산 삭감을 염두에 둔 듯 군불을 지피고 있다. 이처럼 장애인 생존권 보장, 어르신들의 일상생활 지원, 발달장애인 지원센터, 성폭력 상담소, 자살예방센터 등 도민의 가장 약한 고리를 지탱하던 현장 사업들이 예산 소진으로 중단되거나 서비스가
대학수학능력시험의 평가 방식을 둘러싼 논의가 다시 교육 현장의 중심에 섰다. 절대평가 과목 확대와 서·논술형 문항 도입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학생과 학부모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익숙한 제도가 바뀌면 걱정이 앞서는 것은 자연스럽다. 어떤 문제가 출제될지, 기존 공부 방식이 통할지, 사교육 부담이 더 커지지는 않을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다만 이번 변화는 시험 문제의 형식만 바꾸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우리 교육이 무엇을 가르치고, 학생에게 어떤 능력을 요구할 것인지 되묻는 계기가 돼야 한다. 오랜 시간 입시는 정답을 빠르게 찾고 실수를 줄이는 경쟁에 가까웠다. 한두 문제 차이로 등급이 갈렸고, 학생들은 자신이 무엇을 이해했는지보다 다른 학생보다 몇 점을 더 받았는지를 먼저 살폈다. 상대평가 체제에서는 개인의 성취보다 순위가 앞선다. 학생이 충분한 학업 능력을 갖췄더라도 다른 학생보다 점수가 낮으면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배움의 과정이 성장보다 비교에 매이기 쉬운 구조다. 절대평가는 정해진 성취 기준에 학생이 어느 정도 도달했는지를 살피는 방식이다. 제도가 제대로 설계된다면 남을 앞서는 경쟁에서 벗어나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확인하고 보완하는 학습으로